[뉴제주일보]제주 150여 성씨 중 김ㆍ이씨 34%차지…첫 입도 집단은 남평문씨
-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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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150여 성씨 중 김ㆍ이씨 34%차지…첫 입도 집단은 남평문씨
제주 입도조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Ⅰ
제주 150여 성씨 중 김‧이씨가 34%를 차지했다.
또 도내 첫 입도 성씨 집단은 남평문씨였다.
이는 제주학연구센터(센터장 김순자)가 최근 펴낸 ‘제주 입도조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Ⅰ(연구 책임 임승희)’에서 드러났다.
연구 결과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성씨의 10%가 안되는 성씨들이 총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가운데 김씨는 20%에 육박하고 김‧이‧박씨 3성은 전체 인구의 45%를 넘는다.
이 같이 특정 성씨가 우위를 점하는 현상은 제주 또한 마찬가지로 김씨가 24%, 이씨가 10%를 보여 김씨와 이씨가 도내 총인구의 34%를 차지했다.
도내 150여 개 성씨 집단 중 단 두 개 성씨가 34%를 차지하는 것은 놀라운 현상이라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토성인 고씨는 3위, 양씨는 6위, 부씨는 23위였다.
고려시대만 해도 제주에 토성인 고‧양‧부씨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조선 전기와 중기에 유배나 은거를 위해 입도한 성씨 집단이 늘며 제주는 고‧양‧부 집단보다 이주민 집단이 더 많아졌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진이 16세기 이전 제주에 입도한 것으로 확인된 성씨ㆍ본관별 46명의 주요 입도조를 분석한 결과 1194년 고려시대(탐라국시대) 남평문씨를 시작으로 청주좌씨, 광산김씨, 풍기진씨, 연안김씨가 입도해 1300년 당시 고양부 집단과 함께 5개 외래 성씨 집단이 함께 살다가 조선시대에 한반도에서 다양한 분파를 형성한 60여 개 성씨 집단이 제주에 들어와 여러 마을에 분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입도 사유가 확인된 43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 귀화 1명, 유배 7명, 피신 및 은거 14명, 문화 교화 1명, 낙향 14명, 부친 입도(유배) 후 정착 2명, 관리 부임후 정착 4명이었다.
특히 입도 사유 중 문화교화는 제주도 최초 이주민 집단인 남평문씨 입도조 문착의 사례로 문화교화에는 한반도 문화를 제주에 전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고려왕이 탐라를 교화하고자 대제학인 문착을 보냈고, 그는 제주에 입도해 고씨부인을 얻어 정착한 것이 남평문씨 남제공파 입도조가 됐다. 이후 남평문씨 집단은 탐라국 최고 권력자로 성주를 세습하던 고씨와 연합해 왕자 지위를 누렸다.
또 다른 사유인 귀화는 원나라가 탐라를 지배하기 시작한 1270년 경 몽골인과 함께 제주에 들어와 구좌읍 한동리에 정착한 좌형소 사례다. 그는 중국 산동성 청주 출신으로 원나라 천관시랑으로 입도 후 청주 좌씨 입도조가 됐다.
이 밖에도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4년), 기묘사화(1519년), 임진왜란(1592년) 등을 피해 입도하거나 조건 개국에 반대해 유배되거나 낙향한 사례도 확인됐다.
김순자 센터장은 “내년에도 제주 입도조 현황 실태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출처 : 뉴제주일보(http://www.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