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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화북에서 묻다 포구는 어떻게 오늘과 세계를 잇는가

  • 2025-09-22
  • 조회 107
원문기사
https://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520

제4회 화북, 포구문화제 세미나・토론회
사라져가는 포구, ‘복원’이 지운 기억들
김정 목사의 리더십, 오늘과 세계로 계승

2025. 9. 21. 미디어제주(김은애 기자)

 

“제주 사람에게는 밭이 두 개 있다고 하죠. 하나는 뭍의 밭, 하나는 바다밭… 그 바다밭으로 나가는 문이 포구입니다.” -서재철 작가

 

9월 20일 화북동 주민센터 2층 대회의실, 오후 3시. 파도 소리를 닮은 문장이 먼저 객석을 흔들었다. 제4회 화북, 포구문화제를 앞두고 마련된 '2025년 주민과 함께 이야기하는 화북포구' 세미나 자리다. 

 

제주시 화북항 어촌신활력증진사업단과 화북동 주민자치회, 미디어제주, 제주씨앤씨가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는, 지역 주민과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화북포구 및 도내 포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짚고, 앞으로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는 화북포구의 가치를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곧 더 큰 물음으로 이어졌다. 화북에서 시작된 질문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닌, 오늘과 세계를 잇는 길이었다.
 

“복원이 아니라 신축… 원형 위에 시멘트를 덧발랐다”

서재철 작가

포토저널리스트 서재철 작가가 첫 발제자로 나섰다. 그는 제주의 옛 포구들이 지닌 의미를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왔다. 그 소중한 기억은 이날 소환된다. 

 

“제주 포구는 바람과 물길을 달래며 살아온 지혜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죠. 지금도 제주 포구는 지방기념물(현재 명칭 ‘시도기념물’)조차 아닙니다. 해안도로를 닦는 동안 우리는 옛 포구를 거의 다 잃었습니다.”

 

서 작가는 “제주 포구는 자연을 이기려 들지 않은, 바람과 물길을 달래며 함께 사는 지혜의 산물”이라 했다.

 

그는 제주를 포함, 전국을 누비며 포구의 모습을 기록해 왔다. 그리고 제주 포구를 지키지 못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전한다.

 

“전남의 작은 섬에 가 보면요, ‘사람이 살기 시작하며 만든 포구’를 지방기념물로 묶어 공원화하거나 보존합니다. 반면 제주에선 포구를 없애거나,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멘트를 덧바르고 있었죠.”

 

서귀포 망장포 사례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나마 제주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포구에 속하지만, 복원사업을 하며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이 진행된 곳이다.

 

“돌 위에 시멘트를 발라 붙인 걸, 복원이라 할 수 있을까요.” 

 

화북의 환해장성·화북진성의 무너진 원형을 ‘쓸어올려 다시 쌓은’ 방식과 함께, 우도의 원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우도에 있는 원담까지 ‘하트 모양 포토존’으로 바꾸는 걸 보며, 우리는 유산을 ‘소품’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원담은 제주 해안의 자연지형과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돌로 쌓은 전통 어업 시설이다. 고기를 잡는 제주 선인들의 지혜가 깃든 이 구조물은,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제주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품은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는 이를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훼손해왔다.

 

서 작가는 제주 포구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제주 포구의 가치

1. 자연과 공존하는 구조: 안캐–중캐–밧캐, 세 칸으로 나눠 파도의 힘을 조절하는 칸살 구조(내포·중포·외포).

 

2. 지형과 물길의 읽기: 용천수가 솟는 자리를 먼저 고르고, 바다 속 ‘뱃길’을 만들기 위해 온 마을이 돌을 치워 물길을 드러냈던 지혜.

 

3. 등불의 역할: 등기구가 없던 시절, 사람이 올라가 불을 밝히던 ‘사람 등대’.

 

그는 “이런 복합지혜가 응축된 포구는 육지부 어디서도 보기 드물다”며 “조금이나마 원형이 남은 곳만이라도 지역별로 묶어 문화재로 지정해야 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많던 제주의 포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짐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해군 UDT의 1960~70년대 ‘수중암반 폭파’: 파도를 누그러뜨리던 ‘여(礁)’의 대거 소멸.
 

-연쇄적 해안도로 개설: 해안도로 개설을 요구하는 민원과 개발 논리 속에서 원형 포구의 급속한 멸실.

-이용 단절: 배 톤수의 대형화, 소형 포구 이용률 저조. 연탄재·생활쓰레기 매립으로 포구가 공터로 변해간 현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찾는다. 서귀포 망장포, 안덕 대평, 위미 바다 왼편의 옛 포구, 북촌·보목 일대의 등대 흔적 등… 아직 ‘옛 숨’이 남은 포구가, 제주에는 있다.

 

“김정 목사가 지킨 포구, 우리가 계승할 가치”

두 번째 발제자로 선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화북동 동마을 출신)는 화북포구의 첫 공식 기록을 1488년 <표해록>의 ‘별도포’에서 찾았다. 그리고 화북포구의 ‘두 번째 생’을 열어젖힌 인물로 김정(金禎) 제주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영조실록은 김정 제주목사를 ‘청렴·검소, 민정을 잘 다스린 자'라 기록합니다. 이원진 <탐라지초본>에 따르면, 당시 화북포의 규모는 길이 210척(약 70m), 폭 12척(약 4m), 높이 12척(약 4m)에 달하는데요. 과거 축조기술을 생각해보면, 규모가 상당했던 포구죠. 그런데 이런 포구가 ‘큰 물결과 거센 바람에 옛 둑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김정 목사는 포구를 방치하지 않습니다. 대대적 보강에 착수했고, 김석익 <탐라기년>에 따르면, ‘목사가 스스로 돌을 지고 날랐다’는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김정은 탁월한 행정가였다. 그리고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는 진정한 리더였다. 그는 우리가 김정 목사를 기억할 때, 아래 가치를 상기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솔선수범과 희생: 현장에서 짐을 메고 일한(도민과 함께 동고동락한) 목사.

-인본 행정: 공역에도 ‘품삯과 쌀’을 주던 기록.

-해결을 위한 확고한 비전: 화북포구 재축조. 무너진 포구를 ‘더 쓰이게’ 만든 선택, 그래서 화북은 조천보다 더 바쁘게 쓰인 포구가 됐다.

-교육·문화의 확장: 향교 밖의 배움터 ‘삼천서당’ 설치.

 

김 기자는 제안한다. 

“남아 있는 도내 포구를 당장 문화재로 지정합시다. 12년 뒤, 김정 목사 서거 300주년을 맞는데요. 이때는 ‘화북에서 시작한 포구문화제’가 제주–육지–세계 포구로 이야기를 넓혀가길 바랍니다.” 

 

지금 화북에 선 ‘김정목사 선정비’의 글자는 다 닳아 읽기 어렵다. 이에 김 기자는 “주민이 중심이 되어, 비를 새로 세우자”는 제안도 내놨다.

 

수백 년 전 김정 목사의 땀방울이 지켜낸 포구는 오늘의 유산이 됐다. 화북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세계로 뻗어나갈 길을 찾고 있다.

 

기록의 윤리, 복원의 품격

이날 세미나는 ‘낭만’보다 ‘윤리’를 말했다. 

 

하트 모양 원담은 관광객에게 포토존을 선사하고, 일종의 낭만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하지만 원형 위에 시멘트를 덧입히는 손쉬운 공사는 사진 몇 장을 남기고, 기억을 지워버린다. 하트 모양 원담은 관광의 간판을 세웠을지 몰라도, 바람과 파도를 견디던 노동의 지혜를 잘라냈다.

 

서재철 작가의 마지막 말이 오래 남는다.

“전체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지역 단위로 몇 개만이라도 제대로 남겼다면… 그 자체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주의 귀중한 유산이 되었을 겁니다.”

 

김형훈 기자의 말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라도 남아있는 포구에 대한 문화재 지정부터. 그리고 새 비석 하나로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새깁시다.”

 

한편, 세미나에 이어 열린 토론회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보탰다.

 

한 주민은 “화북 해신사는 본래 바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방향이 육지를 향해 있어 제의 의미가 퇴색됐다”며 “환해장성 인근으로 제의 공간을 옮겨 바다를 향한 제의 본래 성격을 되살리고, 동시에 관광 자원화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어촌계 측은 “해신사는 돌이 허물어지고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 위치로 옮긴 바 있다”며 “제의 방향 문제나 비석 정비 문제 등 주민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해신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국가유산청 승인 없이는 변경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주민은 “평생을 화북에서 살았지만, 최근에야 이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됐다”며 “아이들이 학교와 마을해설사를 통해 화북의 역사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포구는 ‘출항’의 공간이며, ‘기다림’의 장소다. 제주 사람은 그 문턱에서 바다밭으로 나갔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일종의 ‘방법’이다. 파도와 맞서는 법, 물길을 읽는 법, 어둠에 불을 올리는 법. 그 방법을 잃으면, 우리는 제주의 말을 잃는다.

 

이날 세미나는 겸허히 묻고 있다. 복원이란 무엇을 되살리는 일인가.  그리고 다시 되묻는다. 화북에서 시작된 질문: 제주의 포구는 어떻게 과거와 오늘, 그리고 세계를 잇는가. 

오늘, 화북에서 답의 시작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