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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제주어로 빚은 웃음과 그리움, 연극 ‘제나 잘콴다리여’

  • 2025-04-18
  • 조회 5
원문기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416010009110

2025. 4. 17. 아시아투데이(전형찬 선임 기자)

 

제11회 무죽 페스티벌 참가작
창작집단 곰, 제주어의 어감과 리듬을 생생하게 담아
사투리 너머 사람을 만나는 작품
언어의 낯섦을 정서의 친밀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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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의 어감과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극 '제나 잘콴다리여'/ 무죽페스티벌 제공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제주 출신 연극인 강제권이 쓰고 연출한 창작극 '제나 잘콴다리여'가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극장 동국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제11회 무죽 페스티벌의 네 번째 공연으로 제주어를 중심에 둔 코미디극이자 언어와 세대, 지역과 정체성의 층위를 다룬 작품이다.

'제나 잘콴다리여'는 2023년 제3회 말모이연극제를 통해 초연되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화제작이다. 초연 당시 짧은 공연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지역어 연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대학로에서 무대화되며 입소문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무죽 페스티벌이라는 보다 실험적이고 창작 중심의 연극 축제 안에서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난다.

작품의 배경은 제주 시골 마을이다. 서울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우진'이 연인의 조부모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제주도를 찾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여자친구는 갑작스러운 회사 일로 동행하지 못하고, 우진은 홀로 낯선 공간에 남겨진다. 제주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는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속에서 당황하고, 상황은 점점 엉뚱하고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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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의 어감과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극 '제나 잘콴다리여'/ 무죽페스티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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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의 어감과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극 '제나 잘콴다리여'/ 무죽페스티벌 제공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사투리 코미디에 그치지 않는다. 중심에 '기억'과 '언어', 그리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인 '제나 잘콴다리여'는 제주어로 '꼴 좋다' 혹은 '샘통이다'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작가 강제권은 이 말이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꾸지람이자 기억의 언어였다고 밝히며 지금은 이 말을 건넨 사람과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고 고백한다. 작품은 그렇게 한 남자의 당혹스러움을 그리면서도 언어에 담긴 정서적 기억과 지역적 감수성을 무대 위로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연출을 맡은 강제권은 제주 출신 배우이자 극작가, 연출가로 현재 서울연극협회 및 한국극작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창작집단곰'을 이끌며 지역성과 동시대적 주제를 결합한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다. 대표작으로는 '없시요' '히야' '이순신과 이순신' 등이 있다.

이번 무대에는 신혜정, 조옥형, 신지인, 그리고 강제권 본인이 직접 출연해 다양한 인물을 그려낸다. 제주어의 어감과 리듬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도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극의 진행은 자막 없이 전개되지만 언어적 이해를 넘어, 표정과 감정, 리듬을 통해 전달되는 비언어적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나 잘콴다리여'가 무대에 오르는 무죽페스티벌은 2015년 창작극 중심의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독립 연극 축제다. '무대에서 죽을란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날것의 무대를 지향하며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진지하게 탐구해왔다.

'제나 잘콴다리여'는 지역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연극적 실험성이 잘 결합된 작품으로서 페스티벌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낯선 언어가 벽이 아니라 통로가 되고, 코미디가 결국 웃음 너머의 그리움에 닿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나아가 제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혹은 언젠가의 고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