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열린마당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 강연 소식과 공지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제주의소리] 의병에서 해녀까지…광복 80주년, 제주서 걷는 독립역사의 길

  • 2025-08-18
  • 조회 220
원문기사
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38620

[광복 80돌] 독립운동의 섬, 7곳의 역사...차량으로 4시간 드라이브 코스

2025. 8. 15. 제주의소리(원소정 기자)

 

광복 80주년을 일주일 앞둔 8월 8일 오후 1시.

 

아름다운 제주시 해안도로를 뒤로하고 오라동으로 향했다. 이날의 여정은 제주 독립운동의 숨결을 따라가는 ‘나라사랑 역사의 길’ 드라이브 코스. 조설대 구국맹약지를 시작으로 고성리 씨름장까지, 제주의 항일 역사를 7개의 현장으로 엮는 길이다.

 

을사늑약 이후 제주의 젊은 유림 12인은 오라동 망배단에 모여 항일의지를 굳히며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뜻의 글자 ‘조설대’를 석벽에 새겨 넣었다. ⓒ제주의소리

을사늑약 이후 제주의 젊은 유림 12인은 오라동 망배단에 모여 항일의지를 굳히며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뜻의 글자 ‘조설대’를 석벽에 새겨 넣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라2동 연미마을에 있는 ‘조설대’(朝雪臺). 조설대는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의미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제주의소리

 

#첫 번째 길목, 집의계 조설대 구국맹약지

차가 닿은 곳은 제주시 오라2동 3135, 조설대 집의계 구국맹약지다. ‘나라사랑 역사의 길’ 중 제주의 독립운동을 따라가는 첫 탐방지다.

 

오라동 4.3길을 따라 돌담 골목을 굽이돌면 ‘오라동 망배단’ 안내판이 보인다. 철문 안에는 ‘조설대’비와 ‘대한광복의사’비가 나란히 서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제주 유림 12인이 이곳에서 결성한 비밀결사 ‘집의계’. 이응호, 서병수, 김병구, 고석구, 김석익, 김기수, 강철호, 김이중, 강석종, 임성숙 등은 바위산 ‘망곡단’에 모여 선언문을 낭독했다.

 

“경술국치를 씻고 왜적에 항거하리라”

 

천지와 더불어 종묘사직에 맹세한 그 날의 결의가 이곳 조설대라는 이름에 남았다.

 

무릎 높이의 풀들이 무성하지만, 그 결연했던 항일의식은 여전히 바람결에 서려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화북2동 황사평 의병 훈련터 입구. 이운강 지사(청산리 전투 참전), 제주 항일 여성운동가 최정숙 선생, 독립운동가 김중현 선생의 묘소 위치가 표기돼 있다.ⓒ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옛 의병 훈련터이자 현 천주교공원묘지. ⓒ제주의소리

 

#두 번째 길목, 황사평 의병 훈련터

조설대를 떠나 차로 20여 분, 제주시 화북2동 5619에 황사평 의병 훈련터가 있다. 

 

의병 훈련터를 기억하는 흔적은 없지만, 분명 이곳은 1909년 초 무기와 구호가 오가던 의병들의 숨은 훈련장이었다.

 

입구 안내판에는 청산리 전투에 참전한 이운강, 항일 여성운동가 최정숙, 독립운동가 김중현의 묘소 위치가 표기돼 있다.

 

1909년 제주 의병은 고사훈·이중심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은밀히 무기를 제작해 이곳에서 훈련했다. 당시 황사평은 조선 말기 군병을 교련하던 장소이자, 제주민란 때 민병대 진지로 쓰였다.

 

지금은 바람이 부는 평야지만, 발밑에는 무기 제작과 훈련으로 흙먼지가 일던 그 시절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하다.

 

ⓒ제주의소리

창을 쥔 한 손, 불끈 쥔 주먹, 결의에 찬 표정의 두 의병상.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사라봉 공원 내 모충사에 있는 의병항쟁 기념탑. ⓒ제주의소리

 

#세 번째 길목, 모충사 의병항쟁 기념탑

다시 차로 15분 달리면 사라봉 공원 안에 있는 모충사(제주시 건입동 1427-13)에 다다른다.

 

1977년 1월11일, 내외 도민 17만 명의 성금으로 지어진 사당이다. 이름 그대로 ‘충성을 사모한다’는 뜻을 품었다.

 

100여 개 계단을 오르면 의병항쟁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창을 쥔 한 손, 불끈 쥔 주먹, 결의에 찬 표정의 두 의병상이 그 시절의 긴박함을 전한다. 탑 왼쪽에는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비, 오른쪽에는 김만덕 기념탑이 서 있다.

 

1909년 제주 의병은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이후 전국에서 불붙은 3차 의병항쟁의 일환이었다. 2월 25일, “왜적을 격퇴하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격문이 제주 전역으로 퍼졌고, 대정군 영락리·신평리를 거점으로 의병이 규합됐다. 그러나 3월1일 고사훈과 김만석이 체포돼 사흘 뒤 총살되면서 거사는 중단됐다.

 

사라봉 숲길을 걸으면 탑과 나무 사이로 그날의 분노와 슬픔이 스며든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조천읍 조천9길 21에 있는 김시황 집·이승훈 유배지가 굳게 잠겨 있다. ⓒ제주의소리

 

#네 번째 여정, 김시황 집·이승훈 제주 유배지

사라봉에서 차로 25분, 제주시 조천읍 조천9길 21에 있는 김시황 집·이승훈 유배지는 굳게 닫힌 나무 대문이 흘러버린 시간을 막고 있다.

 

1911년 5월, 안악사건에 연루된 이승훈은 이곳에서 6개월간 유배 생활을 했다.

 

안악사건은 황해도 안악에서 안명근 등이 군자금을 모집하다 발각된 사건으로, 독립군 기지를 세우려던 계획이 좌절됐다. 유배 중 이승훈은 성내교회의 이기풍 목사와 교유하며 교회 부설 영흥학교를 육성했고, 제주 교육과 산업 발전, 독립운동의 길을 역설했다. 그러나 105인 사건에 연루돼 경성감옥으로 이송,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집은 원래 정의군수 김희수가 지은 것으로, 훗날 손녀 김의남이 학생운동가 김시황과 결혼해 그의 집이 됐다. 김시황은 광주고보 독서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됐으며, 금고 4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굳게 잠긴 대문 앞에서, 닳아버린 목재 틈새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보이는 듯하다.

 

 1919년 3월 21일, 김시범·김시은이 주도한 100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 기를 들고 시위를 벌인 미밋동산.ⓒ제주의소리

1919년 3월 21일, 김시범·김시은이 주도한 100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 기를 들고 시위를 벌인 미밋동산.ⓒ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조천읍 미밋동산 3.1독립운동기념탑. ⓒ제주의소리

 

#다섯 번째 여정, 미밋동산 3.1운동 만세시위지

차로 5분, 같은 조천읍 조천리 1142-2에 미밋동산(만세동산)이 있다. 1919년 3월 21일, 김시범·김시은이 주도한 100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 기를 들고 시위를 벌인 곳이다.

 

시위는 김시우의 제삿날에 맞춰 시작됐고, 나흘간 조천리에서 신도리·함덕리로 번졌다. 「김시범 등 14인 판결문」에는 ‘미모치(味毛峙)’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조천 사람들이 부르는 ‘미밋동산’이다. 지금은 3.1독립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앞에서 당시의 함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바로 옆 항일기념관도 함께 들려 제주의 항일운동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연두막동산 해녀 항쟁 시위지 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의소리

연두막동산 해녀 항쟁 시위지 해녀항일운동기념탑.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의 흉상.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의 흉상. ⓒ제주의소리

 

#여섯 번째 여정,연두막동산 해녀 항쟁 시위지(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미밋동산에서 차로 30분, 구좌읍 세화리 연두막동산에 이르면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1932년 1월 7일 세화 오일장에서 시작된 해녀 항쟁은 12일 이곳에서 절정을 맞았다.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이 주도한 700여 명의 해녀가 모여 일본 어업회사의 횡포에 맞서 지정판매 폐지와 공동판매 부활 등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호미와 빗창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세화 오일장으로 행진했고, 결국 제주도사와의 담판 끝에 일부 요구를 관철시켰다.

 

기념탑에는 태극기와 태왁, 빗창을 든 세 명의 해녀상이 있고, 하단 대리석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부춘화·김옥련·부덕량의 흉상은 소녀 같은 얼굴에 강인함이 서려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씨름장 항쟁지 자리. 갈대밭과 도로만 남아 있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씨름장 항쟁지 자리. 갈대밭과 도로만 남아 있다.  ⓒ제주의소리

 

#마지막 여정, 고성리 씨름장 항쟁지

연두막동산에서 차로 20분, 성산일출봉이 훤히 보이는 고성리 일대가 마지막 여정이다.

 

1927년 5월16일, 정의면 청년회가 주최한 대운동회 씨름장에서 일본 어부들이 경기 방해와 차별적 언사를 퍼부었다.

 

씨름에서 패한 일본 어부가 심판을 폭행하자 500여 명의 제주 청년과 200여 명의 일본 어부가 충돌했다. 일본 경찰은 청년 50여 명을 체포해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일본 어부는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 씨름장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갈대밭과 도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성산의 거센 바람만큼은 당시의 울분을 전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이 지정한 나라사랑 역사의 길 ‘삼다(三多)의 땅 제주, 독립운동의 섬이 되다’ 드라이브 코스. 둘러보고 이동하는 데 약 4시간이 소요된다.

독립기념관이 지정한 나라사랑 역사의 길 ‘삼다(三多)의 땅 제주, 독립운동의 섬이 되다’ 드라이브 코스. 둘러보고 이동하는 데 약 4시간이 소요된다.

 

#독립운동의 섬, 7곳의 역사

‘나라사랑 역사의 길’은 독립기념관이 2007~2010년 조사한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를 기반으로 만든 탐방 코스다.

 

이날의 여정은 조설대를 시작으로 ▲황사평 의병 훈련터▲모충사 의병항쟁 기념탑 ▲김시황 집·이승훈 제주 유배지 ▲미밋동산 3.1운동 만세시위지 ▲연두막동산 해녀 항쟁 시위지(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고성리 씨름장 항쟁지로 이어진다.

 

‘삼다의 땅’ 제주가 ‘독립운동의 섬’이 된 길이다.

 

제주 항일운동은 육지와 맞추며, 때로는 독자적으로 전개됐다. 1909년 의병운동, 1919년 조천 만세운동, 1928년 법정사 항일운동, 그리고 1930년대 추자도 어민 항쟁과 해녀 항쟁까지. 그 다양성과 끈질김은 제주 고유문화에서 힘을 얻었다.

 

제주 코스에서는 항일투쟁의 현장을 돌며 천혜의 자연과 함께 그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4.3평화공원, 국립제주박물관 등 인근 명소와 연계하면 하루가 알차다.

 

풀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낡은 동상을 비추는 햇살. 그 모든 것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말한다.

 

“이 길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