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활명수’ 팔아 독립운동 자금 댄 할아버지와 아버지…내겐 애국도 가업이죠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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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13. 매일경제(고경호 기자)
역사 탐방·해설가로 뛰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조부·부친 등 독립운동에 매진
활명수 팔아 임시정부 자금 대
일제강점기 남산 수난 알리려
2017년부터 해설가로도 활동
제주는 중요한 항일운동 지역
최근 해녀박물관 등 탐방 나서
최근 제주를 찾은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왼쪽 두번째)이 제주해녀박물관을 방문해 박찬식 제주자연사박물관장으로부터 제주해녀 항일운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아픈 역사를 계속 기억하고, 알리고, 반성해야 후손들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 남산을 오르며 역사탐방 해설사로 활동하는 이유이자, 이곳 제주를 찾은 이유입니다.”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73)은 최근 제주에서 매일경제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브랜드이자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의 윤 회장은 제주를 찾아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제주 섬에 새겨놓은 생채기를 들여다봤다.
현재 윤 회장은 두 가지 가업을 이어 가고 있다. 하나는 동화약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애국’이다. 윤 회장의 조부인 보당 윤창식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산직장려계’를 세워 국산 애용 장려를 통한 자주 경제 발전에 힘썼다. 또 국내 항일단체였던 ‘신간회’의 간부로서 조국 해방에 앞장섰고, 1937년 동화약품의 모태인 ‘동화약방’을 맡아 민족 보건산업 육성에 헌신했다.
윤 회장의 부친인 가송 윤광열 동화약품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뒤 광복군에 자원입대해 중대장으로 활약했다. 2대에 걸친 독립운동 과정에서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팔아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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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왼쪽 두번째)
윤 회장은 “할아버지는 국산 물건을 쓰자는 운동을 통해 민족을 살리려 했고, 아버지는 광복군 중대장으로서 일제에 맞섰다”며 “조부와 부친을 이어 내가 해내야 할 일은 치욕스러운 역사,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경희대 의대를 졸업해 경희대병원에서 정신과·신경과 전문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5년부터 동아약품을 이끌어 온 윤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남산 역사탐방’에 매진하고 있다.
윤 회장은 벌써 10년 넘게 매일 남산을 오르내리며 자신만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그의 지도엔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조선총독부’로, 한옥마을은 ‘조선헌병대사령부’로, 한양도성유적전시관은 ‘조선신궁’으로 적혀 있다. 일본이 남산에 지은 신사 터들도 지도에 담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명을 다시 적은 이유는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지도를 토대로 2017년부터 해설사로 나서 현재까지 총 55회에 걸쳐 남산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윤 회장은 “남산에는 조선신궁, 경성신사, 노기신사 등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많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그래서 남산의 아픈 과거를 후대에도 계속 전달하기 위해 남산 역사탐방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고, 책도 냈다”고 말했다.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윤 회장의 발길은 남산 밖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제주를 찾은 윤 회장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함덕 서우봉, 제주해녀박물관, 제주항일기념관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제주의 항일운동사를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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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이 최근 제주자연사박물관에서 매일경제를 만나 역사탐방을 위해 제주를 방문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이번 역사탐방에 동행한 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에게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에도 일본의 신사가 있었나요?’ ‘제주에서는 어떤 경제 찬탈이 이뤄졌나요?’ ‘제주에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주제로 한 투어가 이뤄지고 있나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일제의 경제 수탈에 맞서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에 나섰던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윤 회장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공통된 특징은 경제 찬탈이다. 일제는 여기에 더해 민족 말살을 일삼았다”며 “특히 일제는 제주 섬 전체를 아예 기지화하기까지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막판에 미군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대상 지역 가운데 하나로 제주를 고려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픈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억하고, 알리고, 반성해야 한다”며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지금을 들여다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