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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매일]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향토사 연구·교류 다짐

  • 2025-06-16
  • 조회 305
원문기사
http://www.jndn.com/article.php?aid=1749964161411486108

지역 설화 등 관련자료 공동연구
나주출신 6명의 제주기록도 눈길

2025. 6. 15. 전남매일(이재순 기자)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문화원-제주문화원, 지역 향토사 연구·교류 업무협약

 

나주시와 제주도와 역사적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협약이 체결됐다. 향토사 동반자로서 ‘찾아가는 문화강좌’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제주 속의 나주인을 만나다’를 통해 지난 2023년부터 교류해오고 있다.

나주문화원(원장 윤여정)은 최근 제주문화원(원장 김양택)에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조선시대 나주와 제주와 인연은 나주 진산인 금성산 산신이 제주 민속 토산당설화와 연결돼 있다. 금성산 뱀 신앙이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당 ‘여드렛당 본풀이’ 설화로 전해져 오고 있다. 또 다른 설화는 나주 금성산 뱀이 바둑알로 변해 제주도로 건너가 신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등 나주와 제주와 인연이 민속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 제주를 다녀오면서 기록으로 남긴 6명의 선인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표해록’을 남긴 금남 최부(1454~1504) 선생은 1487년 9월 제주도로 도망간 노비나 범죄지들을 색출하기 위한 ‘제주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돼 제주에 왔다. 이듬해 1월 부친상 소식을 듣고 제주도를 떠났다. 5개월 체류기간 동안 제주도 산천과 토산, 고적, 풍습 등을 두루 살펴보고 옛 기록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487년 12월 ‘탐라시 35절’을 지어 제주에 남겨둔다.

금호 임형수(1514~1547)는 1545년 홍문관부제학으로 있다 실권자 윤원형의 미움을 사 제주목사로 좌천됐다. 일년 만에 파직 당하는데 머무는 동안 ‘관덕정’ 등 7편의 제주 관련 시문을 남기게 된다.

임형수 아들 임구는 제주도로 이거해 평택임씨 제주입도조가 됐으며 지난 2014년 제주시 현경면에 ‘임형수 숭모원’을 건립해 그 얼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목사 임진(1526~1587)과 그의 아들 백호 임제(1549~1587) 이야기는 대표적인 나주인물 이야기다.

1577년 대과에 급제한 임제는 그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 1577년 11월 3일 나주를 출발해 9일 제주에 도착했다. 4개월 동안 머물면서 제주 풍광과 습속 등을 기행문 형식으로 기록하고 한라산 백록담을 등반한 내용을 ‘남명소승(南溟小乘)’이란 글 속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제주도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최초 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주시 다시면 보산정사 팔현(八賢)으로 알려진 최사물(1544~1587)의 기록도 있다. 최사물은 1578년 제주향교 훈도로 재직하면서 기묘사화로 유배 온 충암 김정(1486~1520)의 사당에 제례를 올리는 절차를 기록한 ‘충암선생 사식령 후발’을 썼다.

노안면 출신 반환 홍천경(1553~1632)은 1598년 권율 종사관으로 제주도를 방문한다. 이때 쾌승루(일명 결승루) 상량문을 지어 올리는데 그의 문집 반환유고에 실려 있다.

윤여정 나주문화원장은 “나주와 제주, 제주와 나주의 인연은 오랜 역사와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되는 소중한 답사였다”며 “향후 상호 방문, 학술행사 등 발전방안도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