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 제주해녀 만난 ‘유엔환경계획’ 수장 해녀, 가장 강력한 한국 환경외교 상징
-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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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미 제주해녀협회 부회장 “파도치면 제주바다에 폐플라스틱 등 밀려와”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 첫 일정 ‘제주해녀 면담 주목’
"해양 생태변화 최전선 활동 목격자이자 실천자” 평가
2025. 6. 8. 브릿지경제(곽진성 기자)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이 4일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해안에서 장영미 제주해녀협회 부회장과 만나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제주도)
세계환경의날(6월 5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법환포구 인근에서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과 제주도 해녀(장영미 제주해녀협회 부회장)가 만났다. 이날 두 사람 앞에는 빛바랜 부표와 폐그물이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오염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폐플라스틱들이다. 제주해녀는 청정했던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플라스틱 오염의 출처를 찾고 이를 해결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갈망하는 제주해녀의 호소에 국제사회는 응답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50년 제주해녀의 토로 ”파도만 치면 폐플라스틱 밀려와⋯몇년 새 바다가 너무 많이 변했다"
지난 3일 제주시 귀덕1리에서 만난 이 마을 어촌계 소속 해녀 장 씨는 장장 50여 년의 세월 동안 물질(해녀가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해 온 산 증인이다. 열다섯 살때 시작된 해녀의 삶은 일흔 한 살의 세월로 까지 이어졌다.
장 씨는 “5자매 중 눈이 나빴던 언니를 빼고 다들 잠녀(해녀의 제주도 방언)가 됐다. 10남매를 키운 부모님을 돕기위해 일찍부터 일을 해야 했다“며 “일년에 서너군데 장소를 찾아다니며, 해산물을 채취했다. 열여덟 살때는 울릉도•독도를 찾아가 물질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긴 세월 제주바다는 장 씨를 비롯한 해녀들의 삶의 보고이자, 생명력이 살아 숨쉬 푸른 세계였다. 그런데 최근 몇년새 큰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 폐그물과 어구를 비롯해 페트병, 장난감 등 봇물처럼 넘쳐나는 폐플라스틱으로 인해서다.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갖가지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도 바다 밑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장 씨는 “파도만 쳤다 하면 폐플라스틱 등이 밀려 올라온다"며 “바다 속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주해녀의 근심은 또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따뜻한 바다도 걱정거리다. 그는 “몇해 전부터는 바다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며 "똑똑한 사람들은 온난화라고 하는 그것으로 인해 물이 따듯해졌고, 이로인해 안보이는 생물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파란(고리)문어가 무섭다. 그것한테 물리면 죽는다고 해서 다들 피한다“고 말했다. 또 해양에 유해한 불가사리나 먹지 못하는 군소 종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악화되는 물밑 세계에 대해 제주해녀들은 정화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폐플라스틱들에 점점 수거에 힘이 부치는 모양새다. 장 씨는 “자체정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도 “이전에는 해녀들이 다 젊었는데, 이제 다들 고령화다보니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정화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바다를 신음하게 하는 폐플라스틱, 장 씨는 끝모를 플라스틱 오염의 근원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는 “이 같은 플라스틱이 어디서 오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원인제공 하는 이들에게 조심을 좀 해달라구 말하고 싶다”라고 토로했다.
◇제주해녀와 UNEP 수장⋯해양 플라스틱 오염을 목격하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과 장영미 제주 해녀협회 부회장이 4일 제주 서귀포의 한 카페에서 면담하고 있다. (사진제공=제주도)
플라스틱 오염의 출처를 묻고, 해결을 호소하는 장 씨의 외침은 최근 의미있는 결실을 맺었다. 4일 세계환경의날을 맞아 방한하는 안데르센 사무총장과 제주해녀와의 만남이 성사된 것. 장 씨는 제주해녀를 대표해 안데르센 사무총장을 면담하게 됐다.
세계환경의 날은 지난 1972년부터 매년 6월 5일 환경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촉진하고 있다. UNEP가 주관하고 환경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공동 주최하는 올해 행사는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핵심 주제로 내세우며, 전 세계 시민의 협력과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다만 플라스틱 오염종식이라는 목표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 UNEP에 따르면 현재 사용된 플라스틱의 재활용(Recycling of used plastic)은 오직 9%에 불과하다, 17%는 소각 등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다 자연 속에 남거나 매립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의 플라스틱 협약 성안 마련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의 한국 방문은 세계환경의날을 맞아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적극적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한국 방문의 첫 행사로 제주해녀와의 만남을 택했다. 4일 법환포구 인근에서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제주해녀 장 씨로부터 플라스틱 오염이 해녀 조업 활동과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묻고 들었다. 현장에 있던 제주도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들은 첫 만남 임에도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면담 이후 두 사람의 발걸음은 천혜의 자연을 머금은 제주 해안으로 향했다. 청정지역에는 이질적 물체가 엿보였다. 해녀가 전날 주변 섬에 들어가 손수 수거한 폐플라스틱 어구들이다. 빛바랜 부표와 폐그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육상의 폐플라스틱이 제대로 처리 되지 않아 플라스틱 오염이 발생하면, 이는 결국 바다로 유출되고 종착역으로 해양생태계 영향을 끼친다.
장 씨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제주 바다서 일어나는 기현상에 대해 토로했다. “예전보다 안전한 작업공간이 줄어들었고, 해녀들이 직접 수거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쓰레기에 갇힌 해양생물을 구출하는 일이 일상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인해 해녀는 삶이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플라스틱 오염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주해녀가 오래 갈망하던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이에 노력을 다짐했다. 그는 “UNEP도 해양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오는 8월에 플라스틱 협약을 이뤄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이 4일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해안에서 장영미 제주해녀협회 부회장과 만나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제주도)
◇안데르센 사무총장 “해양 플라스틱 오염, ‘우리 모두에게 온 것‘”
유엔환경계획 수장에게 이날 ‘제주해녀와’의 만남은 특별한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세계환경의날 행사와 면담 곳곳서 제주해녀와의 만남에 대해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주해녀에 대해 “해양 생태변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생생한 목격자이자 실천자"라고 평가한 점도 주목된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4일 브릿지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오늘 만난 해녀 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며 “그분이 가진 인생 스토리가 아주 강력한 경험이었고 본인은 존경과 찬사를 드리는 게 전부 였을 정도였다”고 소회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해녀들이 50년 이상 같은 바다를 지켜온 증인들이고, 이것이 강한 메시지’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제주해녀는) 최근에 어떻게 바다가 변화하는지에 대한 산 증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강할 수밖에 없다. (해녀) 한 분의 목소리가 나 같은 사람 여러 명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양 쓰레기의 출처’를 묻는 제주해녀의 물음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해녀는) 이 폐기물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데 나의 답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서 오거나 공동적으로는 플라스틱을 한 번이나 겨우 몇 번 쓰고 버린 우리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안데르센 사무총장은 이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바다 위에 큰 섬 규모로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나 아메리카 모든 곳에서 온 것들이 같이 섞여 있다. 소스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따지고 구분하기보다 우리 모두에게 온 것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플라스틱 오염종식을 위한 한국의 환경외교적 노력에 묻는 질문에 대해 “오늘 만났던 장 씨 같은 제주 해녀가 가장 강력한 한국의 환경외교의 상징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