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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6년 애써 키운 아들 주검으로... 어머니 대처가 놀랍다

  • 2025-03-20
  • 조회 331
원문기사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1084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2025. 3. 15. 오마이뉴스(김성호)

 

다음 달 영화 <4월의 불꽃>이 개봉한다. 4·19 혁명, 그 직접적 계기가 된 3·15 의거와 열여섯 김주열 열사 사망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 영화사 전체를 통째로 뒤집어 털어도 이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말하기 어려웠던 민망한 현실 가운데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3·15 의거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일대 사건이다. 대한민국 첫 번째 독재자를 끌어내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전국적 봉기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구에서 일어난 2·28 대구학생의거를 시발점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 실체와 달리 공식적인 명분만큼은 휴일등교령에 저항한 대구 지역 학생들의 시위였단 점에서 이후의 3·15 의거를 시작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1960년 3월 15일은 대한민국 4대 대통령선거와 5대 부통령선거 합동 선거일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병옥이 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고 사망하는 바람에 대통령 이승만의 자동 당선이 확정됐으나, 부통령만큼은 접전이 예고됐다.

85세의 고령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던 이승만이 사망할 경우 부통령이 그를 승계하게 되기에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컸던 것이다. 심지어 직전인 4대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꺾고 당선됐던지라 상황이 그때만도 못했던 1960년 자유당의 입장이 긴급할 밖에 없었다.

당당해도 너무나 당당, 국민 우롱한 정권... 떨쳐 일어난 시민
 

4월의 불꽃 포스터

4월의 불꽃포스터 ⓒ 빅브라더스관련사진보기


만약 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친일청산 포기부터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 한국전쟁 당시의 행적이며 보도연맹 학살 및 국민방위군 사건, 계엄과 개헌을 통한 독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오를 재평가하고 그 책임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이 상당했다. 자유당과 부역자들이 총력을 기울여서 3·15 부정선거를 수행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선거를 한 달 쯤 남기고 대통령 이승만이 직접 "의견 다른 사람이 부통령 되면 당선돼도 응종(應從: 응하여 좇음)하지 않겠다"는 긴급담화를 하였는데, 훗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가 대통령의 선거중립성 위반이었음을 고려하자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선거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치졸한 조작극이었다. 당시 조사 문건 등에 따르면 이승만과 이기붕을 미리 표기한 표가 전체 선거인단 기준 4할 정도 들어찬 투표함을 몰래 정식 투표함과 바꿔놓은 곳이 여럿이었다.

야당 참관인을 협박하거나 속여서 내쫓고 자유당 선거인들만이 들어가 조작된 표를 넣는다거나, 개표 과정에서 타 후보 표를 자유당 후보 표로 바꾸거나 훼손해 무효표로 집계하는 수단도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헌법 상 보장된 비밀선거의 원칙도 지키지 않고 자유당을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유권자를 기표소에 들이는 사례도 수두룩했다.

당당해도 너무나 당당하고, 무식해도 엄청나게 무식했다. 의혹이 제기되는 수준을 넘어 부정을 확신할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 지역에선 총 유권자보다 많은 득표수가 나왔고, 이기붕의 득표율도 무려 99%를 찍을 만큼 황당한 결과가 이어졌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황한 나머지 최종 발표에서 10% 이상을 줄여 발표했을 정도로 민망한 수치였다.

최루탄 박혀 떠오른 열여섯 소년의 몸
 

4월의 불꽃 스틸컷

4월의 불꽃스틸컷 ⓒ 빅브라더스관련사진보기


상황이 이러하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즉각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부정선거에 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부정선거 뒤 상당한 시일을 거쳐 이뤄지는 통상적인 저항과 달리 투표 당일부터 시위가 시작된 점은 부정의 수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항은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나 그 중심은 경상남도 마산이라 해야 옳겠다. 당시 기준,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였던 데다 오늘과는 달리 진보의 텃밭이었던 마산이다. 투표소에서 부정을 확인한 이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시위를 시작했고, 그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 개시됐다.

이는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일만이 넘는 시위대가 중심가에 모이기에 이르렀다.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이 발포까지 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사망자는 모두 아홉에 이르렀다. 그중 한 달여가 지난 4월의 어느 날,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 어부의 갈고리에 걸려 떠오른 시신이 있었다. 그가 4·19 혁명을 촉발한 열여섯 소년 김주열 열사다.
 

4월의 불꽃 제작 현장

4월의 불꽃제작 현장 ⓒ 빅브라더스관련사진보기


국민들에 편지 쓴 어머니 "민주주의 찾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2·28 대구 학생의거와 3·15 부정선거, 다시 4·19 혁명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를 한국 문화예술계가 얼마 제대로 다루지 않았단 점은 민망한 일이다(관련기사:기억하자, 65년 전 한국엔 혁명 꿈꾼 청춘이 있었단 걸 https://omn.kr/2ce9l ). 특히 다른 예술 분과보다도 파급력이 큰 영화가 그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제대로 찍은 일 없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세계 만방에 환히 빛나는 오늘의 그늘이라 해도 틀리지가 않다.

촬영감독 출신 송영신이 총감독으로 연출한 <4월의 불꽃>이 내달 개봉을 앞두고 있단 소식은 그래서 반갑고 또 반가운 일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가져온 반쪽짜리 성취를 비교적 실하게 기리는 것과는 달리, 독재의 종결과 정권의 하야를 곧장 이끌어낸 1960년의 승리를 제대로 되새기지 않는 태도가 한국의 비틀린 오늘과도 떨어져 있지 않아 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송영신 외에도 임창재, 도영찬, 신성훈이 연출을 맡았다. 배우 조재윤, 정희태, 조은숙, 김명호 등이 연기했고, 최불암이 목소리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조은숙이 연기했다는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의 이야기가 기대를 모은다.
 

4월의 불꽃 제작 현장 사진

4월의 불꽃제작 현장 사진 ⓒ 빅브라더스관련사진보기


아들의 실종 이후 전라북도 남원에서 경상남도 마산으로 건너와 20여 일 간 일대를 헤매며 아들을 찾았던 권 여사다. 그녀는 혁명이 이뤄진 이후 마산 시민들에게 띄운 편지를 "자식 주열이가 죽은 지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걱정해주신 끝에 지난 4월 11일 다시 마산에서 의거를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서게 해주신 여러분에게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바"라고 열었다.

권 여사는 "자식 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남은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라며 "존경하는 이 나라 어머니 여러분, 그리고 마산시민 여러분의 그 거룩한 뜻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도 적었다.

경찰이 남원까지 몰래 시신을 가져와 시신인수증에 도장을 찍으라 하였을 때 그를 거부하며 이기붕의 집에다 가져다 놓으라 했다던 어머니다. 열여섯 생때같은 자식의 시신을, 한 달 여를 찾아 헤맸던 제 자식의 몸뚱이를 그대로 썩게 놓아두도록 한 마음은 오죽했으랴.

전라도 남원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며 아들 셋, 딸 둘을 키워낸 권찬주 여사다. 그녀는 아들 둘을 앞세우고 1989년에 눈을 감는다. 아들의 죽음 뒤 당대 시민들의 연민과 공감, 분노를 일으켜 결집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권찬주 여사를 국가는 의거 뒤 62년, 사망 뒤 33년이 흐른 2022년에야 3·15 의거 참여자로 인정했다. 국가유공자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