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제주의 소리]“모든 관객·시청자가 자막 없이 제주어 대사 알아듣는 날 오길”
-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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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9일 기사
“모든 관객·시청자가 자막 없이 제주어 대사 알아듣는 날 오길”
[576돌 한글날] 제주어 합창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 제주어 연극 말모이연극제
국제기구 유네스코가 공인한 심각한 소멸위기 언어 ‘제주어’를 예술로 알리는 시도들이 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제주어 합창을 하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과 맛깔나는 제주말로 연극을 만드는 말모이연극제다.
# 화음에 제주어 실어 해외까지 보내다 -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
2015년 9월 창단한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단장 이애리)은 ‘제주의 어린이들이 제주의 문화와 이야기를 제주의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하는 세계유일의 어린이 합창단’을 추구한다.
시작은 초라했다. 첫 발을 뗐을 당시 단원은 13명에 불과했고, 여러모로 완성된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다만, 실력만큼 재미와 합동을 중요시하면서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자신들 만의 색깔을 유지해왔고, 제주어 어린이 합창이라는 고유한 매력은 점차 널리 알려졌다.
▲제주포럼(2016) ▲도쿄·오사카 재일제주인 위문공연(2017~2018)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기념공연(2019)에 이어 올해는 독도, 독일 초청 공연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글날 기념행사 등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활동무대를 넓혔다.
이애리 단장 개인에게도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특별한 존재다. 제주로 이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라진을 만들었고, 생애 첫 어린이 합창 지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주어 합창이라는 조건까지 따라 붙는다.
그는 “제주에 이주했을 당시는 제주어 보전 캠페인이 활발하게 이뤄졌을 때다. 오일장에 가면 어르신들이 쓰는 제주어가 신기하면서 재미있었다. 이미 나온 제주어 곡도 접하면서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아동센터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는데 다들 제주어 노래를 재미있게 따라했다. 그렇다면 정식으로 제주어 합창단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아기 새 같은 작은 입으로 부르는 제주어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이애리 단장은 “최근 독일을 방문해서 공연을 가졌는데, 현지에서도 한국이라고 하면 익숙한 문화들, 예컨대 아리랑·강강술래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갈옷과 해녀옷을 입고 서우젯소리나 오돌또기 같은 색다른 모습을 접하니 무척 반응이 좋았다. ‘한국은 알았는데, 제주는 몰랐다. 너희들 덕분에 알게됐다’, ‘제주라는 곳을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반응에 보람도 느꼈다”고 설명했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은 합창뿐만 아니라 악보화 되지 않은 제주 소리들을 일 년에 한두 개씩 정리하면서 제주어와 제주문화를 보전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7년 넘게 운영하면서 많은 아이들이 합창단을 거쳐 갔는데, 현재 합창단 규모는 40명이 조금 넘는다.
이애리 단장은 “제가 제주 출생이 아니기에 제라진합창단 활동에 있어 제주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많은 조언을 듣고 참고한다. 제라진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공부가 되는 활동”이라며 “현재 합창단 구성은 유치부에서 초등학생 정도가 비중이 높다. 앞으로 중·고등학생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년에는 제주에서 각 사투리로 합창하는 대회를 열기 위해 구상하고 있다. 제라진이 제주에서 사랑받은 만큼 보답하는 마음으로 활동하겠다. 대한민국 문화가 세계 속에서 ‘K-culture’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제주 문화가 ‘J-culture’로 알려지도록 제라진도 힘을 더하겠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 제주어 대사로 울고 웃기는 제주어 연극 - 말모이연극제
‘말모이’는 ‘사전’의 순 우리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편찬 작업도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기록됐지만, 정식으로 완성되진 못했다고 알려진다. 대중적으로 말모이라는 단어가 알려진 계기는 2019년 영화 ‘말모이’ 덕분이다. 이 영화 역시 단어에 담긴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2017년부터 준비하며 2019년 첫 선을 보인 말모이연극제는 출범 당시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반도 전역의 언어, 지리, 문화 특색을 갖춘 우리말예술축제’를 표방했다. 이북 사투리부터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제주도 말을 전면에 내세운 창작 연극 작품을 서울에 모여 공연한다. 당연히 지역 출신이거나 각 지역 정서를 잘 아는 연극인들이 참여한다. 전문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전국 팔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선보이는 연극제는 올해로 4회째 이어가며 인기를 불러 모으고 있다.
제주어 작품은 ▲눈 오는 봄날(김정숙 작·현대철 연출, 2019년) ▲자청비2020(강준 작, 송윤석 연출), 자청비(작·연출 정민자, 이상 2020년) ▲제나, 잘콴다리여!(작·연출 강제권, 2021년) ▲살암시난(작·연출 강재림, 2022년) 등 모두 네 작품을 공연했다. 신혜정, 강제권, 고인배 등을 각기 다른 경력을 지녔지만 제주가 고향이라는 교집합을 가진 연극인들이 참여해왔다.
모든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 가운데 ‘제나, 잘콴다리여!(거참, 고소하다!)’는 타 지역사람과 제주사람의 문화 충돌이라는 구성 속에 웃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제주와 서울 등에서 단독 공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말모이연극제에서 제주어 작품은 ‘재경 제주예술인모임’ 중심으로 제작해오고 있다. 고향 사랑을 간직한 재경 제주예술인모임은 ‘제주 괸당들(대표 신혜정)’이라는 정식 단체로도 발돋움하며 향후 더 큰 활동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말모이연극제 3회 제주어 작품 ‘제나, 잘콴다리여!’를 쓴 연극인 강제권은 “서울을 비롯해 타 지역 관객들은 제주어 연극을 접하면서 외국어처럼 대하기도 하고, 정서나 상황은 비슷하니 신기하면서 공감하기도 한다. 제주어 연극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지역 사투리도 매체를 통해 발굴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목시키는 시도 덕분에 계승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연극·문학인들이 더욱 노력해 어느 배우라도 제주어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대중들도 자막 없이 제주어를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