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열린마당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 강연 소식과 공지사항을 알려드립니다.

[뉴스원]"와랑와랑ᄒᆞ다"…말맛·글맛 살리는 이 제주어 어떨 때 쓰냐면요

  • 2025-11-11
  • 조회 57
원문기사
https://www.news1.kr/local/jeju/5934691

"와랑와랑ᄒᆞ다"…말맛·글맛 살리는 이 제주어 어떨 때 쓰냐면요

[제주어 가게로 보는 제주] ⑪ 와랑와랑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제주올레 5코스 중간에 위치한 카페 '와랑와랑'.2025.10.4./뉴스1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제주올레 5코스 중간에 위치한 카페 '와랑와랑'.2025.10.4./뉴스1

 편집자주 ...뉴스1은 도내 상점 간판과 상호를 통해 제주어의 의미를 짚어보고, 제주어의 가치와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재조명하는 기획을 매주 1회 12차례 보도한다. 이번 기획기사와 기사에 쓰인 제주어 상호는 뉴스1 제주본부 제주어 선정위원(허영선 시인, 김순자 전 제주학연구센터장, 배영환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장, 김미진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들의 심사를 받았다.

(서귀포=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의 남동쪽, 유독 볕이 좋아 귤도 달다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마을 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각지붕 위에 '와랑와랑'이라는 작은 금속 글자 조형물이 서 있는 자그마한 돌집이 나온다.

허경민 대표(50)가 '제주살이' 5년차 때인 2013년 1월, 손수 짓고 살던 집 앞에 마련한 카페다.

이곳의 이름인 '와랑와랑'은 불기운이 세차게 일어나는 모양 또는 사람이 힘차게 달리는 모양을 뜻하는 제주어다. 표준어로는 '우럭우럭'이다.

서울에 살던 허 대표가 이 제주어를 처음 접한 건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2010년 8월에 낸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서였다.

코스를 탐사하던 무렵은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 5월 중순.탐사대들은 와랑와랑한 햇살과 보이지 않는 길 찾기에 점점…

뜨거운 오뉴월 햇살 아래 가시덤불을 걷어내며 도보 여행 길인 '제주올레'를 개척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하는 이 책은 '올레꾼'인 허 대표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2007년 9월 첫 코스가 열릴 때부터 꾸준히 제주올레를 걷고 있다는 그다.

허 대표는 "책에 '놀멍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 '꼬닥꼬닥(천천히 걷는 모양)' 같은 제주어가 많이 나오는데 '와랑와랑'도 그 중 하나였다"며 "발음도, 뜻도 참 예쁜 말이라고 생각하다가 제주올레 5코스가 지나는 곳에 카페를 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호로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개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기운찬 상태를 표현하는 '와랑와랑'이 긍정적인 시그널로 느껴지기도 했다"며 "타지에서 온 손님들은 '와라와라'라는 뜻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곳에 찾아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상호에 담았다"고 미소 지었다.

본문 이미지 - 밴드 둘다의 콘서트 &#39;와랑와랑&#39; 포스터.&#40;밴드 둘다 SNS 갈무리&#41;

밴드 둘다의 콘서트 '와랑와랑' 포스터.(밴드 둘다 SNS 갈무리)

이처럼 제주어 '와랑와랑'은 제주에서 말과 글의 맛을 살리는 반복 부사로 널리 쓰인다.

제주어 구술 채록을 바탕으로 발간된 <제주어 길라잡이(강영봉·김순자·김미진, 2020)>에 따르면 '와랑와랑'은 '집덜 불케와 부난 ᄉᆞ뭇 불꼿이 와랑와랑(집들 불태워 버리니까 사뭇 불꽃이 이글이글)', '열이 와랑와랑 나멍 헛소리도 허는 거라(열이 우럭우럭 나면서 헛소리도 하는 거야)', '이젠 싀 설이난 와랑와랑 돌아뎅기고(이젠 세 살이니까 힘차게 돌아다니고)' 등과 같은 말을 할 때 주로 사용된다.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최초의 제주어 시집으로 알려진 고(故) 김광협 시인의 <돌할으방 어디 감수광>에는 '밤을 새왕 미녕을 ᄌᆞᆺ곡(밤을 새워 무명을 짜고)'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데, 이 시에는 '부섭에 불은 와랑와랑 / 굴묵에 불도 와랑와랑ᄒᆞ주마는(화로불은 이글이글 온돌불도 후끈후끈하지만)'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4·3의 아픔을 다룬 허영선 시인의 시 '죽은 아기를 위한 어머니의 노래'에는 '거친오름 낮은 계곡으로 치달을 때 / 와랑와랑 핏물 흥건한 바닥에 너를 내려놓고 / 불속 뛰듯 달려야 했다 아가야'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와랑와랑'은 열기운이 느껴지는 모습과 정신없이 내달리는 모습을 중첩적으로 드러낸다.

가야금·해금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듀오 '밴드 둘다'는 이 시를 모티브로 2019년 '와랑와랑'이라는 곡을 발표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허 시인은 "'와랑와랑'과 같은 부사는 제주 사람들의 정서 속에 깊이 녹아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언어"라며 "특히나 '와랑와랑'은 어감이 상당히 좋고 여러 문맥에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많은 제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