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고등학교 제5회 졸업 기념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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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3회 제주학 아카이브 ‘우리 마을 옛 사진’ 공개 수집> 공모작
당시 오현고등학교에는 ‘반’이라는 명칭이 없었고 ‘조(組)’로 불렸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동창생 간 나이 차이가 3~4살이 보통이었으며 이는 군 제대 후 입학하거나 4.3사건 여파로 시외에서 제주 시내 전입이 통제되어 늦게 입학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연유로 졸업 몇 년 뒤 한림에서 4살 위 동창생인 김씨(평통위장 역임)를 다방에서 만나 환담하던 중에 새파란 사람이 나이 들어 보이는 지인에게 말을 놓아 대화하고 있으니, 주인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무사 반말이우꽈! 듣기 안 좋으난 조심헙서!”라고 주의를 주어 “동창생끼리 존댓말 합니까?”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때 우리 졸업 인원은 508명이었는데 430명만 졸업 명부에 올라갔지. 막(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못 내면 미등록으로 졸업 제외가 되어버렸지. 낭중에 납부하면 그때의 기수로 졸업하는 걸로 돼 버리곤 해서.”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특히 성산포의 강씨는 등록금을 한참 뒤에 납부해서 15회 졸업으로 올라가 있었고 재일본 동창 등 여러 사람이 그런 경우를 겪었는데 “오현고 50년사를 제작하면서 작성한 동창 명부에 3회로 게재하니 고맙다는 인사 많이 받았주.”라며 술회하기도 하였다. 3학년 A조 위에서 두 번째 줄 좌측 네 번째 인물이 기증자 김익수 선생이다.
조사·정리: 김병효(제주학 시민 아키비스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