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풍토록(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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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Fragment-->조선 중종(中宗) 때 발생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제주에 유배되어 온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이 그의 생질(甥姪)로부터 제주의 풍토와 물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답장으로 써 보냈던 글이 바로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이다. 이는 곧 16세기 제주 지역의 풍토와 생활풍습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 제주 최초의 풍토지(風土誌)인 셈이다. 예컨대 띠풀을 이어 짓는 제주초가의 가옥 형태, 뱀 신앙 등 미신을 숭상하는 풍조의 만연, 대처승이 많은 제주불교의 특성, 오미자 등 제주토산품의 우수성, 여러 종류의 제주 귤유(橘柚) 품제 등 실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그의 빼어난 문장체로 엮어내고 있다. 더욱이 유배인 신분으로서 체험한 일상의 소회와 자신의 심경의 일단을 피력한 부분의 글은 그 문장의 광채가 특히 빼어나서, 심지어 그 글이 흡사 한(漢)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와 비겸 됨을 피력한 인사도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이 뒤로 근 1세기가 지난 인조(仁祖)대에 와서야 제주 유배객인 이건(李健)에 의해서 또 다른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의 출현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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