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 고씨(업무강사철처고씨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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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高氏), 강사철(康士喆) 처(표절비).
소재지 :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건립 연도 : 1867년(제주판관 신재우)
비문(좌측면) 해석 : 건립 감독 김응하 씀.
비문(우측면) 해석 : 동치 6년(1867) 음력 5월 제주판관 신재우 지음.
비문(후면) 해석 : 씨는 탐라업무 고응추의 딸이다. 도광 을미년(1835, 헌종 1)에 태어나, 함풍 계축년(1853, 철종 4)에 강사철에게 시집갔으나 먹고 사는데 가난함을 달게 여겼다. 그 해 11월 13일 남편이 대를 베러 차귀도에 갔다. 바다에 빠져 죽었으나 시신이 가라앉아 찾을 수 없었다. 고씨는 울며 바닷가를 돌아다니고 물결에 쓸려 빠져서 헤엄쳐 나오고 하루종일 식사를 끊다가 같은 달 15일 밤을 틈타 스스로 바닷가 나무에 목을 매었는데 3일 후에 남편의 시신이 그 아래에 이르렀다.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죽어서는 함께 묻혔다. 시골 부녀자로서 능히 순절을 다하였으니 한 시대에도 없고 천고에 없을 드문 일이다. 영부에서 제사(題辭)하는 뜻을 가져, 이윽고 아름다운 도리를 가상하게 여김이 많았으며, 존중하는 글들은 더욱 아름답게 격려하고 힘찼다. 그러나 정문하는 요청에는 일이 중대하므로 결국 자녀가 없고 끝내는 친척이 없었다. 탁월한 명성도 거의 장차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항상 감소되는 것을 개탄하다가 이에 이렇게 돌에 새기게 되니 저승에 간 절부에게 누런 비단에 말을 감히 적었노라.
문헌(수록) : 탐라기년(김석익), 증보탐라지(담수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