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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 제주목: 건포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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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숙종28) 12월 20일, 향품문무 300여 명이 관덕정 앞과 건입포에서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은혜에 감사하는 절을 하는 배례장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유난히 서늘해 보이는 한라산과 성 밖 각 마을에 있는 신당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이다. ‘건포배은’과 ‘신당파괴’ 두 사건을 한 도면에 표현한 것이다.

 

그림 아래에는 불에 타 없어진 신당이 129곳, 훼손된 사찰이 5곳이며, 285명의 무격(남녀무당)을 농업으로 돌려놓았다고 적고 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과 <탐라계록초>에 이 두 사건의 내용과 전후가 밝혀져 있다.

 

건포배은은 이형상 목사가 조정에 장계를 올려 허락을 받음으로써 그동안의 민폐가 상당히 줄어든 것에 대해 국은(國恩)을 입었다 하여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린 것이다.

 

<남환박물>에 의하면 건포배은이 후에 향품문무 등은 이형상 목사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며, 국은에 감격한 백성들은 그 은혜와 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섬의 어리석은 몇 가지 풍속을 스스로 금하겠다고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음사(淫祀: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였던 것이다. 결국 신당파괴는 이형상 목사와 향문문부들과의 만남이 있은 다음날의 사건이었다.

 

두 사건을 한 도면 안에 표현한 것은, 당시 제주도민들의 정서는 정반대였겠지만 이형상 목사는 신당 혁파 자체를 큰 업적으로 여겼기 때문인 듯하다.

(해설 출처: 제주목 관아)

유형별
고문헌
학문별
역사 > 제주사일반
매체별
고문헌 > 고문서
생산연도
1703
저자명
제주 세계유산본부
소장처
제주 세계유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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