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역사기사
-
「일제하신문기사」조개껍질 단추공장 제주도 설치 연구되다 (貝殼ボタン工場 濟州島設置硏究さる)
1938-12-03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남선의 보고 「제주도」축항 촉진이 긴요 (南鮮の寶庫「濟州道」 築港促進が肝要)
1938-09-18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제주의 무수 주정은 동척이 경영인가 (濟州の無水酒精は東拓が經營か)
1938-06-01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에서 대목장을 개척 (濟州島にて大牧場を開拓)
1937-06-11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보고 「제주도」의 개발협의회 개최 (寶庫「濟州島」の開發協議會開く)
1937-02-18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정원을 이미 돌파한 제주도 해녀 출가 해초채취의 최성기를 준비하면서 (定員を旣に突破した濟州島海女の出稼 海藻採取の最盛期を控へて)
1936-05-13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신수”는 속임수 사교들 돈벌이 (“神水”はトリック 邪敎輩の金儲け)
1936-01-28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전남산업과에서 유동 증식을 장려 (全南産業課で油桐增殖を奬勵)
1935-09-10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내지로 내지로 해녀군 진출 (內地へ內地へ海女群進出)
1933-05-19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경상남도) 전복 보호 증식과 제주도 해녀 입어문제 ((慶尙北道)鮑の保護增殖と濟州島海女の入漁問題)
1932-01-14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경상남도) 해녀 2천여 명 사활문제로서 진정 ((慶尙南道)海女二千餘名の死活問題として陳情)
1931-04-02 · 조선신문
-
「일제하신문기사」제주도는 천산이 풍부 (濟州島は天産が豊富)
1928-05-10 · 조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