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칠성본풀이


정의

제주굿에서 집안의 부를 지켜주는 뱀신인 칠성(부군 칠성)의 내력을 담은 본풀이.


내용

옛날 옛적 장나라 장설룡과 송나라 송설룡이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는데 쉰 살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다. 수덕 좋은 절에서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석 달 열흘 백 일 동안 정성껏 빌어 월궁의 선녀 같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딸이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 장설룡은 천하공사, 어머니 송설룡은 지하공사 벼슬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부부는 딸을 데려갈 수 없으니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 가두어놓고 늦인덕이 정하님에게 구멍으로 밥을 주고 옷을 주며 잘 보살피도록 신신당부하고 길을 떠났다. 늦인덕이 정하님은 주인의 당부대로 아기씨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런데 이레째 되는 날 아기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동서로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자 바삐 돌아오라고 상전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린 딸은 부모가 그리운 나머지 찾아 헤매다가 기진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때 스님이 곁을 지나가다가 아기씨를 발견하고는 짐짝 위로 얹어 놓고 다녔다. 밤에는 같이 누워 자고 낮에는 데리고 다니면서 시주를 받았다.
딸의 가출 소식을 들은 장설룡 부부는 벼슬살이를 그만 두고 급히 돌아와서 동서로 순력하며 딸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스님은 아기씨를 데리고 다니며 희롱하다가 문밖의 노둣돌 밑에 아기씨를 숨겨 놓았다. 장설룡 부부가 아이의 행방을 점쳐 달라고 하자 노둣돌 밑을 살펴보라 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노둣돌을 헤쳐 보니 아기씨의 얼굴은 기미가 거멓게 끼고 몸은 뱀처럼 아리롱다리롱하고 배는 불룩해져 있었다. 아기씨는 임신한 것이 확실했다. 장설룡은 집안의 수치라고 크게 화를 내면서 딸을 죽이려고 했다. 이를 지켜본 송설룡이 차마 딸을 죽일 수 없으니 무쇠석갑(돌함)에 담아서 동해바다로 띄워 보내는 게 어떠냐고 애원하며 통사정을 하였다. 장설룡의 허락이 내려지자 아기씨는 울면서 부모와 이별하고 일흔여덟 큰 자물쇠를 채운 돌함에 담겨 바다에 띄워졌다.
돌함은 바다를 궁글궁글, 흥당망당 떠돌아다니다가 물마루를 넘어 제주 바다로 밀려왔다. 돌함에 담긴 아기씨는 각 마을에 좌정한 당신堂神들이 하도 세어서 도저히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토산에서 모슬포로 돌아 한림, 애월, 제주를 거쳐 동쪽으로 세화 마을까지 갔으나 아무리 사정해도 당신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돌함은 밀물을 타서 서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함덕리 서무오름 아래 이르러 보니 제일 올라갈 만한 곳이었다. 돌함은 서무오름 아래 썩은개로 올라갔다. 함덕리 해녀들이 물질하러 가다가 돌함을 발견하고는 보물인가 하여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송첨지 영감이 중재하여 보물이 나오면 똑같이 나누기로 하고 마침내 돌함을 열었다. 돌함의 뚜껑을 열어 보니 금은보화는커녕 혀는 멜록멜록, 눈은 펠롱펠롱, 몸뚱아리는 아리롱다리롱한 여덟 마리의 뱀이 소랑소랑 누워 있다가 오망오망 기어 나왔다. 아기씨가 뱀 일곱 마리를 낳고 뱀으로 환생한 것이었다.
해녀들은 더럽고 재수 없다며 뱀들을 빗창으로 집어 던지고 돌멩이를 맞히고 나서 물질을 갔다. 그날부터 물질 이 안 되고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입술이 부르트면서 몸이 부었다 나았다 반복하면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신병이 들자 문점을 하였더니 남의 나라에서 들어온 신을 박대한 죄 때문이니 굿을 하라고 하였다.
해녀들은 바닷가 포구에서 두이레 열나흘 큰굿을 하였다. 굿을 하고 나니 신병이 씻은 듯이 나아 물질을 나갈 때마다 전복, 소라, 미역을 한 망사리 그득그득 채우게 되어 재물이 쌓이고 거부가 되어갔다. 그래서 해녀들은 서무오름 앞에 칠성당을 만들어 모시기 시작하였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그 조상 우리도 좀 나누어 달라.”며 너도나도 위하고 섬기며 모시니 함덕 마을은 삽시에 부촌이 되어갔다. 함덕리에서 당골(단골)들에게 얻어먹게 된 칠성아 기씨들은 무척 살기가 좋았다. 하지만 이 마을에도 한도가 있으니 좀 더 큰 곳을 찾아가면 낫겠다고 생각했다.
칠성들은 함덕을 떠나 제주 성안으로 향했다. 제주 성안에 들어와 산지물에서 한숨 쉬고 있는데 동네 송대정집 부인이 허벅을 지고 물을 길러 왔다가 산지물 입구에 소랑소랑 누워있는 뱀들을 발견하였다. 물을 긷고 나와 보니 벗어 둔 치맛자락에 뱀들이 오골랑오골랑 누워있기에 “우릴 살릴 조상님이거든 어서 옵서.” 하면서 치맛자락에 싸다가 고방에 모셨다. 그로부터 송대정집은 우마가 번성하고 자손이 창성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여 삽시에 부자가 되었고 집안에 현감 벼슬까지 났다. 칠성이 제주 성안 에 들어와 좌정했다 하여 그 동네를 ‘칠성골’로 부르게 되었다.

 

칠성눌(뒷할망)_표선민속촌_2006_김순자


칠성들은 여기저기서 얻어먹으며 얼마 동안 잘 지냈으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다니며 얻어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일곱 아기를 불러놓고 각기 얻어먹을 곳을 찾아 들어가라고 말했다. 큰딸은 추수할망, 둘째 딸은 이방·형방 관청할망, 셋째 딸은 옥지기 옥할망, 넷째 딸은 과원할망, 다섯째 딸은 창고할망, 여섯째 딸은 관청 못할망으로 각자 좌정처를 정하였다. 일곱째 막내딸은 집 우영팟에 이엉을 엮어 만든 주젱이를 덮고 그 아래 청기와 흑기와 속으로 좌정하여 밧칠성이 되고 어머니는 곡식을 지키는 고팡할망으로 좌정하여 안칠성이 되었다. 사람 들은 곡식을 지켜주고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밧칠성과 안칠성을 위하여 칠성코사를 지내어 섬겼다.


특징과 의의

칠성본풀이는 해녀들에게 물질과 생업의 풍요를 안겨주는 부신富神으로 시작하여 점차 집안과 마을에 부를 가져다주는 공동체의 섬김의 대상이 되고, 마침내 ‘안칠성·밧칠성’으로 좌정하여 집안 조상신으로 모셔지는 과정을 노래한다. 뱀을 인격화한 어머니와 일곱 딸 모녀신母女神은 집안의 부를 관장하는 부신·풍요신에서 점차 역할이 분화되어 관청신·과원신·형벌신·치병신·곡물신·농경신으로 직능이 확대되어 광범위하게 섬김을 받는다. 칠성본풀이에 나타나는 칠성신들의 이동 경로, 직능, 구실을 통해 제주사회의 인식체계, 여성의 지위와 역할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칠성본풀이는 1년에 한 번씩 밧칠성을 위하는 ‘철갈이’ 의례를 비롯하여 칠성새남, 칠성고사, 속신 의례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민간신앙과도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의 신화적 심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참고 문헌

문무병, 《제주도본향당 신앙과 본풀이》, 민속원, 2008.
양영자, <칠성본풀이>, 《제주신화집Ⅰ》, 제주문화원, 2010.
진성기, 《남국의 무속》, 제주민속연구소, 1966.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1991.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5.
현용준, 《제주도신화》, 서문당, 1996.


필자

양영자(梁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