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풀이

세경놀이(씨앗 뿌리기)_제주_1966_현용준
개관
제주도에는 본풀이라는 무속 설화가 있다. 본풀이는 굿 제의에서 심방이 신의 생활사와 내력을 풀이하고 사람들의 의사를 신에게 전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지는데 무악기의 장단에 맞추어 신을 향해 구송하는 사설이다.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의 기원을 설명하고 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질서를 믿고 숭앙하는 신성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풀이는 신화가 된다.
제주굿에는 해녀들의 생업과 긴밀히 관련되는 본풀이가 다수 전승되고 있다. 해녀들은 마을굿, 잠수굿, 영등굿, 요왕맞이굿 등 여러 굿판에 참여하여 당신堂神, 요왕신, 영등신을 비롯하여 여러 직능을 지닌 신들에게 바다밭을 풍요롭게 해 주고 물질에서 해상사고를 막아달라고 빌었다.
<요왕세경본풀이>는 바다의 풍요를 기원하는 잠수굿, 영등굿 등에서 풍농을 관장하는 신격인 용왕세경할망의 내력을 풀이하고 기원하는 신화이다. 해산물 경작지인 바다밭의 풍농을 기원하는 요왕세경본풀이를 구송함으로 써 바다 농사에서 풍농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요왕차사본풀이>는 영등굿, 잠수굿, 요왕맞이 같은 굿에서 바닷속 용왕차사(체ᄉᆞ)에게 기원하는 신화이다. 바닷일에서 사람이 죽으면 바다의 용왕에 소속된 저승차사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물질 중 죽음을 면하고 무사 안녕하게 해달라고 빈다.
<칠성본풀이>는 집안의 부를 지켜주는 뱀신인 칠성(부군 칠성)을 노래하고 기원하는 제차祭次에서 구송되는 신화이다. 칠성신은 해녀들에게 물질과 생업의 풍요를 안겨주는 부신富神으로 시작하여 점차 집안과 마을에 부를 가져다 주는 공동체의 섬김의 대상이 되고 마침내 ‘안칠성·밧칠성’으로 좌정하여 집안 조상신으로 모셔진다.
<구실할망본풀이>는 조천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나주 김씨 집안의 내력을 담은 조상신 신화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여성이 물질로 부자가 되어 집안을 일으키고 나주 김씨 집안의 자손 번성과 집안의 번창을 관장하는 ‘구실할망’으로 모셔지는 과정을 노래한다.
<새콪당고냥할망본풀이>는 나주 기민창 조상이 조천읍 조천 포구 ‘새콪’에 좌정하여 당할망이 되고 선흘리 안씨댁 조상이 된 내력을 구송한 신화이다. 기민창을 지키던 무곡貿穀의 여신이 제주에 들어와 어부와 잠수들의 생업을 관장하는 해신·어로관장신으로 좌정한다. 해녀들은 물질을 갈 때마다 새콪할망당에 들러 물질의 무사고와 안녕, 수확물의 풍요를 빈다.
<마라도본향애기씨본풀이>는 대정읍 마라도 할망당에 전해 내려오는 본향신 신화이다. 자연과 인간의 희생물이 된 ‘업저지’가 마라도 본향당 당신인 애기할망으로 좌정하여 해녀들에게 물질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수호신 구실을 한다.
해녀들이 참여하여 벌어지는 굿판의 본풀이에는 해녀들의 우주관·세계관·가치관뿐 아니라 해녀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건, 풍속, 생활 등 해녀들의 삶의 여정과 역사의 단면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