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공간

마라도어장_마라도 2024_송동효
개관
바다에서의 해녀 물질은 육상에서 하는 농사와는 다르다. 물질은 수온·수압·풍파 등 환경적 영향으로 매우 힘들고 위험하다. 해녀의 물질은 특별한 호흡 장비를 갖추지 않고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캐내는 작업이다. 바위 밑이나 돌 틈에 숨어 있거나 바위에 견고하게 부착된 전복 등을 캐낸다. 잘못하면 ‘빗창’이 바위틈에 끼어 위험할 수도 있는 작업이다.
수산업 관련 법규상 마을 어업에서는 잠수부나 스쿠버 다이버들이 사용하는 공기 호흡 장치가 있는 장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한 산소호흡 장치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 패류와 해초류를 캐내는 나잠 어업의 특성상 이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물질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동작, 캐내는 동작, 포획물을 가지고 물 위로 올라오는 동작이 일정 시간 내에 일관성 있게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바다의 수온(제주도 연안수온: 하절기 24°C 내외, 봄·가을 20°C 내외, 겨울 15°C 내외)은 사람의 체온보다 매우 낮기 때문에 오랫동안 물속에서 활동하기 어렵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옷을 두껍게 입으면 바닷물의 부력과 수압 때문에 물속에서 작업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해녀들이 하는 물질을 옷을 벗고 잠수한다는 ‘나잠裸潛’과 바다에서 일을 한다는 ‘어업’의 합성어인 ‘나잠어업’이라고 한다.
1970년대 초부터 나잠어업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보온이 잘 되고 침수가 안 되는 합성수지(스펀지) 잠수복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겨울에도 두 시간 이상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물질 환경이 나아졌다. 하지만 합성수지 잠수복이 보급되었다 해도 바닷물에는 수압과 부력이 있어 수심 10m 단위로 1기압씩 높아지므로 수심이 깊을수록 수중 작업이 힘들어지고 직업병(잠수병, 두통, 신경통, 심장질환, 귓병 등)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해녀들은 이러한 직업병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약을 상시 복용하는데 이것마저도 내성이 생겨 약효가 점차 줄어들기에 지속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물질할 때에는 풍파 등 자연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 파도의 울렁거림 때문에 멀미를 하고 파도에 휩쓸려 부상당 하거나 물질작업 중에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해녀들은 물질이 끝나면 힘든 몸을 쉬거나 언 몸을 녹여 건강을 추슬러야 한다. 현재는 마을 어장 곳곳에 온수 목욕시설이 겸비된 해녀탈의장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화된 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해안가 노천에 돌담으로 둘러쌓아 만든 속칭 ‘불턱’ 에서 모닥불이나 건초에 불을 지펴 추위를 겨우 피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캐낸 해산물을 팔기 위한 작업도 하여야 한다. 수협에 살아있는 상태로 공동 판매할 수 있는전복이나 소라, 해삼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성게 등은 알만 꺼내어 팔아야 하므로 성게 껍데기를 까는 작업도 까다롭고 힘이 많이 든다. 특히 미역, 톳, 천초 등의 해조류는 햇볕에 잘 말리고 불순물을 제거한 후 보관해 두었다가 공동 판매한다. 해조류는 생산 후 기상 상태에 따라 품질이 결정된다. 날씨가 흐려 말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비라도 맞게 되면 품질이 떨어져 제값을 못 받게 된다.
해녀들은 바다에서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가사노동을 해야 하고 농사일도 병행해야 한다. 바다 물질은 간조 시간대에 하는데 그 시간대가 일정치 않아 농사일을 하다 가도 그 시간이 되면 일손을 멈추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해녀들은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쉴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과 온갖 시련을 참아가며 살아온 제주 여인의 표상인 것이다.
‘바당밧’은 제주도의 강인한 여성상을 상징하고 공동체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해녀들의 생산공간이다. 제주바다의 특징은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나온 용암이 바닷속 깊이 흘러들어 돌바다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용암은 해안가에서 가까이는 수백m, 멀리는 수천m까지 퍼져 나갔다. 해녀들의 바다밭인 공동어장은 수심 7m까지의 ‘걸바다’ 밭이다. 바닷속에 다양한 모습의 돌이 깔려 있는 바다를 두고 ‘걸바다’라 하는데, 이는 낚시할 때 낚싯줄이 ‘걸리는’ 바다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걸바다 밭은 화산용암의 흐름에 따라 형성되어 있어 지질환경도 다양하다. 환경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해양 생태계가 이뤄지고 그에 맞는 어로기술이 전승되었다.
밭을 방언으로 ‘밧’이라고 하는데 ‘모살밧’은 모래의 제주어가 ‘모살’이니 모래가 깔린 바다 밭이라고 하고 ‘조작지밧’은 바닷가에 조그마한 ‘작지(자갈)’가 깔려있는 바다 밭이며, 커다란 돌멩이가 깔린 밭을 ‘머흘밧’이라고 한다. 바다 밭의 울퉁불퉁한 수중 암초를 ‘여’라 하는데, 간조 때 드러나는 ‘여’를 ‘난여’, 드러나지 않는 여를 ‘숨은여’라 한다.
제주바다에는 학교의 운영이나 마을 운영 등 공동의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마련한 ‘학교바당’, ‘이장바당’ 등도 있다.
해녀 쉼터로는 ‘불턱’이 대표적이다. 불턱은 해녀의 전용 노천 탈의장을 일컫는 말이다. 해녀는 평소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불턱에서 일상복을 벗고 물질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고 물질옷을 입는 순간부터는 전문 직업인이 된다. 불턱은 해녀에게 있어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는 환경이 될 뿐만 아니라 바다라는 작업장과 직접 연결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불턱은 물질에 앞서 장비를 점검함은 물론 바다에 대한 지식과 바다환경에 대한 정보의 습득 장소이자 동료 해녀와 물질하는 과정에서의 상호 협조를 재확인하는 장소이다. 또한 불턱은 해녀들이 고된 물질을 한 후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해녀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땔감을 쌓아 불을 피운다. 땔감이 없으면 해변에 있는 마른 해조류를 사용하기도 한다. 물질하고 맨 먼저 나오는 해녀가 화톳불을 피운다. 해녀들은 차가운 바다에서 물 밖으로 나오면 불턱에서 화톳불 앞에 앉아 언 몸을 녹인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몸 열기가 생기면 물질에 있었던 다양한 상황을 다른 해녀들과 함께 공유하고 향후 물질하면서 참고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해녀 사회에서 불턱은 단순히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장소 혹은 노천 탈의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연 공간으로서 불턱은 탈의장 역할을 하지만 인문적 측면에서는 단순 노동이면서도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해녀라는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직업학교 역할도 담당했다. 지역공동체 사회의 질서를 익히는 장소이자 해녀들의 삶에 있어 지켜야 할 도덕성을 기르며 해녀들이 따라야 할 해녀회 규칙 등 다양한 규범을 함양하여 집단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도량의 역할까지 겸하였다.
어장은 해녀들의 모임 조직인 해녀회의 회원들에 의하여 관리된다. 해녀회는 마을에 근거를 둔 여성들의 자발적 결사체이다. 대부분의 마을 여성이 참여하게 되고 지역사회의 강한 연계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회원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에는 해녀회 총회에서 제명할 수 있다. 해녀 회원의 의무는 공동어장의 관리와 연관된 ①바다풀 캐는 작업 등 바다 청소, ②미역바다 등 바다 돌보기, ③해녀회가 결의한 공공사업(마을의 학교 설립, 마을 안길 정비, 마을이장의 공공업무 추진비 등으로 쓸 미역 공동 채취 및 기탁, 공공시설 건립비 공동적립, 기타 잠수회가 정하는 사업 등), ④상부상조 등이다. 그리고 해녀회에 소속된 사람이 다른 마을로 출가하면 자격이 상실되는 등 엄격하게 관리된다. 아울러 다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겨도 자동적으로 자격이 상실된다. 이는 철저히 해당 마을 내 거주와 공동 작업을 전제로 한 규정이다.
물질은 위험한 조업환경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또한 물질은 해녀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행한다. 물질은 해녀가 물속으로 얼마나 깊숙하게 잠수하든, 바다 밭에서 무엇을 캐든 해녀 개개인의 자유라는 점에서 개별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은 개별 노동인 듯하면서도 집단적이며 공동체적이다. 해녀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마을 어장은 마을 해녀들과 함께 관리되어야 하고, 바다 밭은 늘 위험이 도사린 곳이므로 서로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이웃 마을과 어장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도 해녀들은 서로 단합하여 대처해야 한다. 해녀회의 규칙을 이행하는 상황들, 예를 들면 새로 이사해 온 해녀에 대한 입어권을 어떻게 인정해 줄 것인가, 마을을 떠난 해녀의 입어권은 언제까지 묵인할 것인가 하는 일을 상호 의논해서 처리한다. 바다에서 수확한 생산물 역시 철저히 상의하면서 같은 조건으로 판매한다. 해녀들의 물질은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마을의 해녀들과 더불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자치기구인 해녀회(잠수회) 중심으로 수행된다.
따라서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해녀들은 가족의 생계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중심축으로서 활동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 문헌
강경민 외 3명, 《제주도 마을어장 관리 변천사 연구》, 제주연구원, 2015.
제주도, 《제주의 해녀》, 199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수산 60년사》, 2006.
필자
강경민(姜冏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