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왕세경본풀이

자청비_강요배 그림
정의
바다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주도의 잠수굿과 영등굿 등에서 풍농을 관장하는 신격인 용왕세경할망의 내력을 담은 본풀이.
내용
아주 오랜 옛날 김진국과 조진국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넘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이었다. 영험 있는 절에 빌어보기로 하여 동개남 은중절에 수륙불공을 올렸다. 온갖 제물을 차려 기도를 올렸는데 공양물이 반 근이 모자라 여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딸을 얻었는데, 자청하여 낳은 딸이라 하여 이름을 자청비라고 지었다.
자청비는 앞이마는 일광, 뒷머리는 월광이 비치는 듯하여 천하일색으로 아름답고 총명하였다. 자청비는 금지옥엽 귀하게 자랐다. 어느 날 주천강 연화못으로 빨래하러 간 자청비는 하늘나라 문곡성(옥황)의 아들 문도령을 만났다. 문도령은 인간 세상 거무선생에게 글공부, 활공부를 하러 길을 나섰던 것이다. 문도령과 자청비는 첫눈에 반하였다.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자신의 오빠를 보낼 테니 친구 해서 같이 글공부를 가라고 해놓고는 집으로 달려갔다. 부모에게 글공부하러 가겠다고 하자 부모는 여자가 글공부를 해서 무엇하겠냐며 만류했다. 자청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방사우를 갖추고 남장하여 연화못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문도령과 함께 글공부를 떠났다. 자청비와 문도령은 한 방에 기거하면서 함께 글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자청비는 꾀를 내어 이부자리 사이에 장애물을 갖다 놓아 서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시일이 흐르자 문도령이 의심하기 시작했으나 자청비는 오줌 갈기기 내기 등을 하며 능청스럽게 위기를 모면했으므로 문도령은 자청비가 여자임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공부를 시작한 지 삼 년이 되는 어느 날, 까마귀가 문도령에게 하늘나라 아버지의 편지를 주고 갔다. 공부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어서 돌아와서 서수왕의 딸과 혼인하라는 내용이었다. 문도령은 일찍이 서수왕의 딸과 혼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도령이 하직하고 떠날 때가 되어서야 자청비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집으로 돌아간다. 문도령이 뒤늦게 자청비를 따라가게 되고 둘은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된다. 문도령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박씨와 얼레빗을 반쪽으로 나누어 자청비에게 주고는 하늘나라로 떠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문도령은 돌아올 줄 몰랐다.
자청비의 집에는 정수남이라는 종이 있었는데 남몰래 자청비를 사모하였다. 나무하러 간 정수남이는 소와 말을 모두 잡아먹으며 나무 그늘에서 잠만 자다 돌아와서는 하늘나라 문도령이 절세 미녀들과 노는 것을 구경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수남이는 문도령이 노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자청비를 꾀어내 희롱하면서 깊은 산속으로 데려갔다. 문도령을 보고 싶었던 마음에 정수남이의 꼬임에 빠지게 된 자청비는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자청비는 정수남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기지를 발휘했다. 머리의 이를 잡아주겠노라고 무릎에 눕게 해서 정수남이가 잠이 들자 청미래덩굴 가지를 귀에 넣어 정수남이를 죽인다.
자청비의 부모는 집안을 먹여살리는 일꾼을 죽였다고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당장 정수남이를 살려내라고 한다. 자청비는 남장을 하고 환생꽃이 있다는 서천꽃밭을 찾아간다. 서천꽃밭에 간 자청비는 부엉새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서천꽃밭의 문제를 해결하고 꽃을 얻는다. 자청비는 환생꽃을 가지고 은빛 두레박을 타고 내려와 죽은 정수남이를 살려낸다. 하지만 자청비의 부모는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딸이 무섭다며 다시 집에서 쫓아낸다. 자청비는 천신만고 끝에 하늘나라에 올라가 문도령의 부모를 만난다. 문도령 부모가 내건 과제를 재치있게 처리하고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한 자청비는 마침내 문도령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런데 문도령이 계략에 빠져 죽음에 처하자 자청비는 환생꽃을 얻기 위해 다시 서천꽃밭을 찾아간다. 꽃을 얻기 위해 남장하고 가서는 꽃감관의 말젯딸과 혼인한다. 환생꽃을 얻고 돌아온 자청비는 문도령을 살려낸다. 그 후 서천꽃밭 꽃감관의 딸에게 문도령을 보내어 한 달에 보름은 꽃감관의 딸과 살고 나머지 보름은 자신과 함께 지내기로 한다. 하지만 서천꽃밭 꽃감관 딸에게 간 문도령은 돌아올 줄 몰랐다. 자청비는 시아버지인 하늘옥황 문선왕에게 그간의 사정을 아뢰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나자 자청비는 난리를 평정하고 그 대가로 오곡의 씨앗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온다. 오곡과 메밀 씨앗을 가지고 돌아온 자청비는 오곡풍등을 관장하는 여신, 즉 세경할망이 되었다. 정수남이에게는 우마 번성을 시켜주어 마불림제를 받는 목축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특징과 의의
<요왕세경본풀이>는 잠수굿, 영등굿 등에서 구송된다. 해녀들은 바다에 요왕이 있다고 믿고 요왕이 해산물의 풍요를 주며 바다밭 일에서 무사 안전까지도 보장한다고 믿었다. 미역, 소라, 전복 등이 번식하는 것도 바다의 농사로 보고, 바다밭에도 농신農神인 세경할망이 있다는 관념에서 굿할 때 요왕세경할망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즉, 농경의 원리를 바다에 적용하여 해산물 채취의 경작지인 바다밭의 풍농을 기원하는 요왕세경본풀이를 구송함으로써 바다농사에서 풍농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요왕맞이를 하고 나면 심방은 제상 앞에 앉아서 장구를 치며 <요왕세경본풀이>를 노래하는데 내용은 풍농을 관장하는 신격인 세경할망의 내력을 풀이하는 <세경본풀이>와 같다. 세경본풀이에는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 제주 여성문화의 전형을 구현하는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참고 문헌
강소전, <제주도 잠수굿 연구: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동김녕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문무병, 《제주큰굿자료집1》, 황금알, 2019.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1991.
현용준, 《제주도무속과 그 주변》, 집문당, 2001.
필자
양영자(梁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