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고순효


고순효_해녀박물관 제공

정의

제주해녀 항일투쟁의 주역 해녀 중 한 사람.


내용

고순효(본명 고차동, 1915년생)는 구좌면 하도리 굴동 1410번지에서 고우남의 장녀로 태어났다. 10세부터 해녀 활동을 하다가 같은 동네(굴동)에 거주하던 부춘화와 김옥련, 부덕량, 김계석과 함께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16세까지 수학하여 제1회로 졸업했다.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교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민족자주의식을 고취했다.
1931년 12월 15명 가량의 하도리 해녀 대표들과 함께 제주읍내로 항의를 하러 가다가 풍파로 실패했지만 이후 하도리 해녀 주동자들과 함께 세화 장날을 이용해서 투쟁할 것을 계획하고 해녀 모임을 연락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32년 1월 12일 다쿠치 제주도사에게 항의시위를 벌였던 상황을 보도한

신문기사(《朝鮮新聞》 1932년 1월 16일자 기사)_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932년 1월 7일 세화리 오일장터에서 열린 하도리 해녀들의 항일투쟁에 앞장서며 투쟁 행진을 했다. 1932년 1월 12일 사흘 동안 먹을 양식을 등에 짊어지고 하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빗창’과 호미를 무기로 삼아 제주도사를 면담하고 항의하기 위해 행진을 했다. 해녀들이 제주도사에 항의하며 맞서자 일본 경찰은 투쟁에 가담한 청년과 해녀들을 검거했다. 고순효는 해녀들이 검거될 때 세화리의 아버지 집에 은신하여 검거를 피할 수 있었다.
하도리 해녀 대표로 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하고 지원 활동을 했지만 검속되어 수감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일운동의 참여 활동을 증명하지 못하여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지 못했다.


참고 문헌

박찬식, <제주 해녀의 항일운동>,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 제주 해녀항일투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 1995.
박찬식, <제주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제주학 인물사, 20세기 제주를 빛낸 여성들》, 제주학연구센터, 2022.
현상호, 《제주도 해녀투쟁의 사실》, 1950.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