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부덕량

夫德良


부덕량_해녀박물관 제공

정의

제주해녀 항일투쟁의 주역 해녀 중 한 사람.


내용

부덕량(夫德良, 1911~1939)은 해녀항일운동의 주역으로서 1932년 1월 하도·종달·세화·우도·시흥·오조리지역 해녀 1천여 명이 참가한 투쟁을 주도했던 여성이다. 구좌면 하도리에서 부계준의 장녀로 태어났다. 13세부터 해녀 생활을 시작했고 17세에 본격적으로 해녀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한글 공부를 하고 근대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제주섬 동쪽의 토지는 척박하여 여성이라면 모두가 물질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다. 먹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던 물질 노동의 가치에 대해 야학을 통해 새로 자각하게 되었다.
부덕량은 해녀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항일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해녀항일운동 과정에서 해녀조합의 부당함에 대한 항의 시위운동에 앞장섰다. 1931년 12월 20일 일제의 해녀 착취에 항의하기 위한 하도리 해녀회 대표회의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해녀 대표 10여 명과 함께 1932년 1월 세화리 장터 시위에서 해녀들을 규합하며 시위에 앞장섰다. 모든 해녀투쟁 참여자를 대표하여 일본인 제주도사와 직접 협상을 했다.
부덕량은 경찰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6개월간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다. 안타깝게도 이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1939년 10월 4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항일운동으로 평가를 받아 결국 해녀항일운동의 주역인 부덕량 건국포장(2005년)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참고 문헌

박찬식, <제주 해녀의 항일운동>,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 제주해녀항일투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 1995.
박찬식, <제주 해녀항일운동의 주역>, 《제주학 인물사, 20세기 제주를 빛낸 여성들》, 제주학연구센터, 2022.
현상호, 《제주도 해녀투쟁의 사실》, 1950.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