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역바당

메역무레_북촌리_1970년대_서재철
정의
해녀들이 미역을 채취하기 위해 구획한 바다.
내용
1970년대 양식 미역이 생산되기 전까지 제주해녀들의 중요한 수익원은 미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마을어장이 있는 마을마다 해녀들이 주도하여 바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제주의 해녀들은 3월이 되면 날을 정해 겨울 동안 키운 미역을 캐기 시작하는데 이를 ‘메역해경’ 또는 ‘메역허체’라고 한다. 미역은 중요한 수익원으로 일부 해녀들의 경우 평소에는 잠수를 하지 않다가 미역철에만 잠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일정한 생산량과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 미역이다.
‘메역바당’에서 미역을 채취할 수 있는 권리는 마을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메역바당’에 따른 의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향회가 소집되고 반마다 반원 명부가 작성된다. 마을의 미역을 지키기 위하여 구역별로 나누어 ‘메역바당돌기’를 한다. 미역바다를 감시하는 것이다. 미역 금채기간 중에 미역을 채취한 것이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당장 수색하고 압수한다.
미역 채취는 온 가족이 동원되는 작업이다. 일손이 모자라면 일손을 빌리기도 한다. 미역해경은 톳 채취와는 달리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구역에서 다 함께 물질한다. 채취 기간 동안 그 구역에서 채취한 미역은 개인의 몫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온 가족이 매달리고 해녀들은 자기가 가진 물질 수단과 방법을 최대한 발휘하여 생산성을 높인다. 온 마을이 동원되는 ‘메역바당’에서 미역 채취 기간 동안 마을 청년회는 허채기간 내내 ‘메역바당’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힘씀은 물론 사고를 예방하고 처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특징과 의의
제주해녀들에게 ‘메역바당’에서의 미역 채취는 가족 생존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역 채취로 얻은 소득으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자녀들을 교육하였다. 아울러 재산을 증가시키고 마을 공동체를 위하여 학교를 짓고 마을회관을 짓기도 하였다. 어민 공동체인 어촌계에 서부터 수협에 이르기까지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호부금 을 조성하는 등 지역사회의 경제활동에도 기여하였다.
참고 문헌
김영돈 외 2명, 《해녀조사연구》,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86.
제주도, 《제주의 해녀》, 1996.
필자
강경민(姜冏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