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위미2·3리 수신제


위미2·3리 수신제_위미2리_2021_김순자

이칭

위미2·3리 정성제


정의

남원읍 위미2리와 위미3리 어촌계 해녀들이 정월에 택일하여 수신에게 해상 무사고를 기원하는 유교식 의례.


내용

위미리는 남원읍의 해안 마을이다. 위미리는 위미1리, 위미2리, 위미3리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위미2리와 위미3리는 수신제水神祭라는 의례를 함께 지낸다. 수신은 물을 관장하는 신이니, 수신에게 물로 인한 액운을 막아달라고 기원하는 제사이다. 곧 이때 수신은 바다의 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해녀들은 바다의 신을 ‘요왕(용왕)’으로 인식하는데, 이 의례에서는 수신이라 하여 모신다. 이 수신제는 달리 ‘정성제精誠祭’라고도 부른다. 정성을 들이는 제사라는 뜻이다. 수신제는 기원 대상을 내세운 명칭이고, 정성제는 행위 주체를 앞세운 명칭이다. 그런가 하면 수신제는 나름대로 공식 명칭인 듯하고, 해녀들이 실제 자주 쓰는 명칭은 정성제로 보인다.
과거에는 수신제를 하기 전에는 바닷가에서 3~5일 동안 ‘큰굿’을 벌였다고 한다. 속칭 ‘상코지바당 설덕’이라는 곳에서 3년에 한 번씩 큰굿을 하였다. 이를 ‘대신 맞은 날’ 또는 ‘대신왕굿’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다가 무속식 큰굿이 현재의 유교식 수신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해녀들이 잇달아 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마침 큰굿을 하던 장소를 누군가 부수어 버리는 일도 생겼다. 주민들은 ‘상코지바당 설덕’이 부서지자 동티가 났다고 여겼다. 이에 ‘바다 토신제’라도 하라고 해서 그때부터 제를 주관하는 이를 청하여 정성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현재 수신제의 유래가 되었다.
수신제는 정월에 택일하여 지낸다. 제장은 여전히 상코지바당이다. ‘세천’ 포구의 위미2리 해녀탈의장에서 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바닷가 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다. 시멘트를 덧발라 사각형으로 돌담을 쌓고 내부에는 제단도 만들었다. 제일을 앞두고 제장을 청소하 고, 위미2리 어촌계 사무실에서 여러 준비를 한다. 제물은 돌레떡, 산메, 채취 해산물(전복, 소라), 생선(옥돔), 생소고기, 생닭, 과일, 채소, 술 등을 마련한다. 돌레떡은 해녀들이 직접 만든다. 사실 돌레떡은 무속식 제물인데, 과거 큰굿의 영향인지 유교식 수신제 제물로도 올린다. 전복과 소라는 해녀들 가운데서도 해산물 제수 장만을 위해 지정 된 이가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자연산으로 채취해 오는 것이다.
수신제는 초저녁 무렵에 시작한다. 오후 5시경 제물을 가지고 제장에 간다. 어촌계장, 해녀회장, 부회장 2명, 제물 담당 해녀 4명까지 모두 8명의 임원들만 참여한다. 초헌관은 해녀회장, 아헌관은 2리 해녀부회장, 종헌관은 3리 해녀부회장이 각각 맡는다. 수신제를 유교식으로 지내는데 삼헌관을 해녀 여성 임원들이 맡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어촌계가 수신제를 진행할 제관을 모셔온다. 이 제관은 남성으로 마을 주민이며, 선친 때부터 제관 역할을 맡아 왔다고 한다. 수신제를 진행하는 동안 제장 입구에 금줄을 매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게 한다.
오후 6시경에 제단에 ‘대해용왕지령위大海龍王之靈位’라고 적은 위패와 함께 제물을 진설한다. 이어 제를 진행하 는 남성 제관이 축문을 읽으며, 삼헌관들도 절하며 정성을 드린다. 수신제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제의 마지막 순서는 ‘도지드림’이다. ‘지’는 여러 제물을 조금씩 넣어 백지로 싼 것을 말한다. 해녀가 바다에 가서 지를 던지며 기원하는 것을 ‘지드림’이라고 한다. 따라서 ‘도지드림’은 해녀공동체 차원에서 크게 도지를 만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도지드림’ 역시 무속식 의례의 영향이다. 수신제를 마친 다음에는 제관들이 어촌계 사무실로 돌아가 다른 해녀들과 함께 음복한다.


특징과 의의

위미2리와 위미3리에서는 해녀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를 거듭 벌이고 있다. 정월에 택일하여 유교식으로 수신제를 지내고, 음력 2월 13일에 무속식으로 영등굿을 한다. 유교식과 무속식 의례가 공존하며 어업 활동을 돌보는 것이다. 사실 유교식 수신제도 그 유래를 살펴보면 과거에 하였던 큰굿의 유산이기도 하다. 수신제의 삼헌관을 해녀 여성 임원들이 맡고, 돌레떡 같은 무속식 제물을 올리며, 바다 용왕에게 도지드림을 하는 것도 무속식 굿의 영향인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수신제는 제주도에서 위미2리와 위미3리의 사례 외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해녀라는 생업공동체에 대한 신앙을 잘 간직하였다. 수신제를 ‘바다 토신제’라고 하는 말에서도 바다를 밭으로 인식하는 사고가 나타난다. 바다는 해녀들의 생업 터전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고은솔 외 3명, 《위미2리 해녀와 마을 이야기》, 제주학연구센터, 2021.


필자

강소전(姜昭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