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굿

요왕질침(이용옥 심방)_제주_2008_제주학연구센터
이칭
영등제, 영등맞이, 영등손맞이,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
개관
영등굿은 제주도 전역에서 영등신이 들고 나는 기간인 음력 2월 1일부터 15일까지 생업 풍요를 위해 벌이는 굿이다. 영등굿이 두루 부르는 명칭이다. 이 밖에 영등제, 영등맞이, 영등손맞이,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 등으로도 불렀다. 영등신이 들어올 때 영등환영제를 지내고, 보름 뒤 영등신이 나갈 때에 맞춰 영등송별제를 지낸다고 여겼다. 현재 전승되는 양상을 보면 영등환영제에 견주어 사실상 영등송별제를 더 비중 있게 치르는 편이다. 현재 제주도 전역에서 주로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대개 음력 2월 12일경부터 시작해서 15일까지 기간 동안에 영등굿이 집중되어 있다.
영등굿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16세기 초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2월 초하루에 귀덕과 김녕 등지에서 장대 12개를 세워 신을 맞이하여 제사 지내며, 약마희躍馬戱를 해서 신을 즐겁게 하고 보름이 되어 끝내는 것을 연등이라 한다고 기록되었다. 17세기 초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2월을 연등절이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표류되어 죽은 당나라 상인의 몸이 분해되어 두골은 제주 동쪽의 어등포에 들어가고 수족은 고내, 애월, 명월 등의 포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그곳 주민들이 마을에서 쌀을 모아 제사하였다는 것이다. 문헌의 ‘연등’ 기록이 현재까지 전승되는 영등굿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영등신은 보통 ‘영등할망’이라는 여성 신격으로 인식된다. 영등신은 겨울 북서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제주도에 찾아와 땅과 바다에 풍요를 가져다 준다. 영등신은 ‘강남천자국’에서 온다고 여긴다. 음력 2월 1일에 들어와서 2월 15일에 다시 나가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영등신이 오는 시기에는 소라나 고둥 따위의 속이 텅 비어 있으며, 이때 도민들은 빨래도 하지 말고 배도 띄우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영등신은 기본적으로 풍신風神의 성격을 가진다. 영등신이 오가는 기간의 날씨 상황에 따라서 딸이나 며느리를 대동하였다고 하며 한 해의 풍흉을 예상하기도 한다. 한편 ‘영등대왕’이라는 남성 신격으로 인식하는 사례도 있다.
오늘날의 영등굿은 주로 해안 마을에서 해녀와 어부의 해상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역할을 한다. 제주도 내 여러 마을에서 비교적 전승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영등굿은 사실 제주도 전체적으로 농업과 어업을 포함한 생업의 풍요를 위해 벌어졌던 것이다. 본향당의 음력 2월 제일과도 밀접한 굿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그 역할이나 기능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오늘날에는 영등굿이 공간적으로는 주로 해안 마을에 남아 있고, 내용상으로는 해녀와 어부들을 위한 굿으로 변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영등굿은 근래에는 당굿과도 별개로 당의 제일과 상관없이 해녀공동체가 택일하여 지내는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지다 보니 점점 마을굿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지드림_우도_1981_현용준
현재 영등굿은 초감제와 요왕맞이를 중심으로 씨드림· 씨점, 액막이, 지드림, 선왕풀이·배방선 등의 주요 제차로 구성된다. 초감제는 여러 신을 청하는 제차로 굿의 전반부를 이룬다. 요왕맞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요왕(용왕)과 배의 선왕船王 등을 맞이하여 기원하는 제차로 굿 후반부의 핵심적 순서이다. 씨드림은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며 해녀들이 바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좁쌀을 뿌리는 주술적 행위이다. 씨점은 씨가 과연 잘 뿌려져서 해산물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점쳐서 알아보는 제차이다. 씨드림과 씨점은 생업공동체가 지향하는 풍요를 상징하는 요소인 셈이다. 액막이는 한 해의 운수를 헤아리고 액을 막는 순서이다. 지드림은 백지에 여러 제물을 조금씩 뜯어 모아 정성스럽게 싼 뒤 용왕과 수중고혼을 대접하기 위하여 바다에 던지는 제차이다. 선왕풀이와 배방선은 굿을 마무리하면서 선왕을 대접하여 보내는 절차로 작은 모형 배를 바다에 띄워 보낸다.
2024년을 기준으로 하면 제주도 내에서는 모두 18곳의 해안 마을 어촌계에서 해녀들이 영등굿을 하였다. 굿을 벌인 날을 순서대로 어촌계를 파악해 보면 하효, 남원, 태흥3, 함덕, 한수, 조천, 태흥1, 사계, 북촌, 온평, 신천, 위미1, 위미2, 태흥2, 고성, 성산, 시흥, 오조 등이다. 한편 중산간 지역에서도 당굿에 기반한 영등굿이 아직 전승되는 마을이 있다. 구좌읍 송당리, 남원읍 한남리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영등신앙은 한국 본토에서는 주로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개인적으로 받드는 신앙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에 견주어 제주도에서는 영등신이 마을 공동체 집단의 숭앙 대상이었다. 즉 영등신에 대한 의례를 행하는 규모나 방법 등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제주도에서 영등굿은 음력 2월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겪으며 새해 새봄을 맞아 농업이나 어업 등의 생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벌이는 굿이다. 영등굿은 이른 시기부터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널리 알려졌다. 더불어 제주해녀문화와 밀접한 양상이 두드러지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참고 문헌
강소전, <제주도 잠수굿 연구: 북제주군 구좌읍 김녕리 동김녕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강소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의 영등신앙>, 《제주 대림리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대한주택공사, 2008.
문무병, 《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 황금알, 2005.
장주근 외 2명, 《제주도 영등굿》, 열화당, 1983.
현용준,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집문당, 2001.
필자
강소전(姜昭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