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턱
정의
한림화가 198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내용
<불턱>은 한림화(1950~ )가 1987년 무크지 《여성해방의 문화》(평민사)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한림화의 서설집 《꽃 한 송이 숨겨놓고》(한길사, 1993)에도 수록되었다.
작품 제목 ‘불턱’에 주를 달고 있다. 먼저 “잠수들이 물질하러 바닷가에 나갈 때 옷을 갈아입는 장소”라고 그 정의를 내린 후에 “불턱에서는 잠수 개개인의 신상 문제를 비롯하여 마을 전체의 삶이 야기하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토론하며, 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즉 불턱은 잠수 집단의 의회이며 어린 사람에게는 물질과 인생을 배우는 학교이기도 하다. ‘금남의 장소’이므로 비록 잠수 가족 중의 누구라 할지라도 남자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여인들만의 지역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중심 공간이 불턱임은 물론이다.
제주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가는꽃마을의 해녀들이 불턱에서 갖가지 대화를 나누고 일을 도모함을 전언하는 방식으로 이 소설은 전개된다. 화자가 ‘순덱이 어멍’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전언하는데 편지 쓴 날짜는 1601년 여름, 1901년 5월 4일, 1932년 2월, 1948년 4월 30일, 1987년 3월 8일이고, 맨 마지막 날짜는 소설이 발표된 현재의 시점이다. 특정인이 4세기에 걸쳐 특정인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는 일이므로 ‘나’로 설정된 복수의 발신자가 복수의 수신자인 ‘순덱이 어멍’에게 편지를 쓴 것이겠다. 즉, 역사를 살아온 제주 여성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대화인 셈이다.
전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제주도의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살아온 제주 여인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양상이다. 여성들의 삶이 힘겨운 것은 임신한 상태로 진성의 파수를 서야 하고, 봉기한 민군들을 다각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생사를 넘나들며 채취한 해산물을 수탈당해야 하고, 이념 때문에 생사를 넘나드는 데에서 한결같다. 신축제주항쟁(이재수란) 당시의 해녀들은 특히 “오늘도 어떻게든 이 난을 우리 여자들이 도모하여 꺼보자고 불턱에서 의논을 했다네.”라면서 불턱이 제주 여성 사회의 대화 광장임을 보여 준다. 1932년의 해녀항쟁에서도 “오늘도 우린 불턱에 있었다네.”라면서 옆 동네 어린 해녀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 와 항거 소식을 전해준다. “기어이 우리가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 잠수들이 권익을 도모해 보고자 결성한 조합을 그들이 한입에 집어먹고 우릴 억눌렀다는 사실은 누누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걸세. 일어서 긴 일어섰는데 그들이 짓밟는 힘 또한 너무 세군.”이라고 항쟁 상황을 말한다. 4·3 때에는 “제주도에는 피비린내가 자욱해서 지옥을 방불케 하고도 남는” 광풍 속에서 “불턱에서는 매일 심각한 공론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언하고 있다.
특징과 의의
이 소설에서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양상이 해녀들만의 공간인 불턱을 통해 수렴되고 있음은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여성들에 의해 포착되고 재해석된 제주 역사, 즉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story)로서의 제주 역사를 서술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김동윤, 《4·3의 진실과 문학》, 각, 2003.
김병택, 《제주현대문학사》,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5.
필자
김동윤(金東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