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생애
정의
현기영이 199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내용
<거룩한 생애>는 현기영(1941~ )이 《우정 반세기》(창작과비평사, 1991)를 통해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현기영의 창작집 《마지막 테우리》(창작과비평사, 1994)에도 수록되었다. 주인공 ‘간난이(양유아)’는 제주섬 동쪽의 우묵개라는 어촌에서 해녀의 딸로 태어나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밭과 바다로 번갈아 드나들며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일곱 살 아래 어린 동생을 업고 키웠다. 열세 살부터 물질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열일곱 나이에 상군해녀가 되었다. 간난이는 대마도와 주문진 등으로 바깥물질을 다녀오는 등 억척같이 일한 끝에 부친이 잃어버렸던 밭을 되사기까지 한다.
스무 살이 되어 여섯 살 연하의 김직원 장손과 혼사를 치른 그녀는 모진 시집살이 끝에 물질 나간 일이 계기가 되어 두 달 만에 친정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시집에서는 해녀의 물질을 천시하여 못 하게 막았던 것이다. 얼마간 경상도 쪽으로 바깥물질을 다녀온 후 시어머니와 남편의 다짐을 단단히 받고 시집에 들어갔으나 곧 시아버지가 죽고 시어머니 병구완을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그 와중에 물질하여 번 돈으로 남편을 읍내 농업학교까지 졸업 시켰지만 남편은 왜놈의 앞잡이가 되기 싫다며 마을에서 야학당 선생 자리를 맡는다. 그녀는 다른 해녀들과 함께 야학공부를 하며 어업조합의 부당한 수탈을 감시하는데 창씨 개명과 조선어 말살정책 등이 시행되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차에 조합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해녀들이 저항하는 일이 있었는데 간난이는 그 일의 주동자로 몰려 구류를 살았다. 그 후 태평양전쟁이 터지고 해녀들은 허기진 몸으로 감태 채취에 강제 동원되었다. 간난이는 못 먹은 채 힘든 노동을 하며 출산을 했으나 약하게 태어난 아이 둘은 곧 죽고 만다. 이듬해 다시 출산하자 무당집에 호적을 올리며 아이 목숨을 보전케 한 뒤 징용 대상인 남편을 인솔자로 하여 아홉 명의 해녀와 함께 금강산 위의 장전에 바깥물질을 간다. 그러던 차에 종전이 되었고 일행은 간신히 삼팔선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호열자가 창궐하여 삼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민심이 흉흉하던 차에 1947년 삼일운동 기념대회에서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여섯 명이 사망하자 온 섬이 총파업에 돌입한다. 육지부에서 응원경찰대, 서북청년단이 미함정을 타고 대거 들어오면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했다. 간난이네도 시숙부가 붙잡혀 간 데 이어 남편도 끌려갔다. 남편은 석 달 만에 만신창이인 채로 풀려났으나 곧 4·3봉기가 시작되어 경찰이 찾아오자 스스로 동맥을 끊는다. 겨울이 되자 이번엔 간난이를 붙잡아 가려고 군인이 찾아왔다.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간난이 앞으로 시어머니가 막고 서서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면서 며느리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그녀는 이미 불순분자의 명단에 올라 있었다. 해녀로서 부당한 일제의 착취에 맞선 것이 해방된 조국에서 죄가 된 것이다. 게다가 남편의 징용을 피할 겸 돈도 벌 겸 금강산 부근에 바깥물질 갔다가 뒤늦게 해방 소식을 듣고 돌아온 사실로 인해 이북에 얼마 간 머물렀으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지적까지 받게 되었다. 결국 간난이는 그날 저녁 바닷가 모래밭에서 여덟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총살당한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는 제주해녀 간난이의 서른네 해 삶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간난이야말로 격변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제주 민중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특징과 의의
생활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역사에서 외면당하고 나아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해녀 간난이를 통해 제주섬의 운명이 오롯이 읽히는 소설이다. 간난이의 길지 않은 생애에는 일본제국주의의 횡포와 4·3의 광포성이라는 현대사의 큰 줄기가 뚜렷이 박혀 있다.
참고 문헌
김동윤, 《기억의 현장과 재현의 언어》, 각, 2006.
김동윤,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 한그루, 2019.
필자
김동윤(金東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