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ᄌᆞᆷ녀풀이


정의

일제 강점기인 1932년 1월 제주도에서 발생한 가장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민족해방운동의 하나인 세화리 해녀항쟁을 다룬 마당극.


내용

1980년 8월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 수눌음’이 마당극 <땅풀이>를 창단 공연함으로써 연극의 전문화 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향파두리 놀이>(1980), <돌풀이> (1981), <ᄌᆞᆷ녀풀이>(1982), <태ᄉᆞᆫ땅>(1983) 등을 공연하였다.
<ᄌᆞᆷ녀풀이>는 1982년 12월 제주시 동인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983년 2월 서울 <극단 연우무대>의 초청으로 국립극장 실험무대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공연법 위반 등의 이유로 타의에 의해 ‘극단 수눌음’이 해체됨에 따라 더 이상 공연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94년 11월 ‘놀이패 한라산’이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이를 재구성하여 공연하였고, 1997년 ‘민요패 소리왓’이 다시 공연을 선보였다.
<ᄌᆞᆷ녀풀이>는 바다에서 숨진 ᄌᆞᆷ녀들을 위한 요왕맞이 굿으로 시작하여 혁우동맹의 야학운동 과정을 풍자한 학습놀이, 제주 ᄌᆞᆷ녀들의 물질 모습과 일제의 해산물 착취 과정 등 모두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마당에서는 <노젓는소리>와 함께 파도와 싸우며 힘차게 노를 저어가는 ᄌᆞᆷ녀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민요와 동작으로 보여주면서 불법 어로작업을 하는 일본 어선에 항의하다가 능욕을 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처절한 삶의 한을 표현한다.
둘째 마당에서는 혁우동맹이 실시한 야학운동 과정을 ‘학습놀이’의 형태로 풍자한다. 시국담과 교육을 통해 ᄌᆞᆷ녀들의 사고방식은 더욱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변모한다.
셋째 마당에서는 물질해서 얻은 채취물이 당시 착취기관에 의해 저가로 빼앗기다시피 넘겨지면서 ᄌᆞᆷ녀들은 생계유지도 힘들어진다. 여러 차례에 걸친 합법적인 방법에 의한 해결방안이 여러 차례 일방적으로 묵살됨에 따라 ᄌᆞᆷ녀들의 분노는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넷째 마당에서는 ᄌᆞᆷ녀들의 봉기가 그려진다. 세화리 장날에 모여 요구조건을 다시 호소하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분노한 ᄌᆞᆷ녀들은 조합장이 탄 차를 부수고 봉기하였으나 일본 경찰대에 의해 처절하게 체포당한다.
다섯째 마당에서는 재판을 통해 ᄌᆞᆷ녀, 혁우, 유림, 일본의 입장을 살펴본다. 침략자 일본의 악랄함과 혁우, 유림의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ᄌᆞᆷ녀들에게 새로운 삶이 모색됨을 보여준다. 극중 어느 ᄌᆞᆷ녀가 재판정에서 하는 최후진술은 이 작품의 주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못 배우고 천헌 게 어떵허단 말이우꽈? 우린 이보다 더 설움 받으멍도 살아왔수다. 이번 일이 몬딱 끝났젠 생각허지 맙서. 당허민 당헌 만큼 일어납니다. 아무리 못 배우고 천허여도 다 지만씩덜 사는 법이우다.”


특징과 의의

<ᄌᆞᆷ녀풀이>는 제주도 마당극의 새로운 전형을 세운 작품이다. 종래의 제주 연극이 서구 연극의 이식 형태인 무대극으로 일관해 온 데 반해, 마당극은 열린 공간인 마당에서 공연함으로써 어울림의 문화를 창조한 새로운 양식의 연극이다. 1980년 8월 ‘수눌음 문화 선언’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중앙집권적 제도권 문화에 반발하여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지역의 주체적인 문화 생산과 향유를 추구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항일운동가 강관순이 지은 <해녀의 노래>를 처음으로 선보였고, <노젓는소리> 등 제주민요, 제주굿의 석살림 요소와 오줌싸개놀이 등 다양한 굿놀이를 극중에 적절히 배합하여 극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했다.


참고 문헌

<극단 수눌음>, 공연 대본, 1982.
<놀이패 한라산>, 공연 대본, 1994.
<민요패 소리왓>, 1997.
장일홍, <연극>.
제주문화예술60년사편찬위원회, 《제주문화예술60년사》2, 제주특별자치도, 2008.
《중앙일보》 1983년 2월 17일 기사.


필자

김경훈(金京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