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해녀〉_1938_김인지
정의
불턱에서 불을 쬐고 있는 해녀들의 모습을 그린 김인지의 1938년 작품.
내용
김인지(1907~1967)는 제주도 중문면 하예리 출신으로 1927년 전남도립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하여 1943년 중문공립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주변의 풍물을 부지런히 그렸다. 그 결과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작품 <애崖>가 입선 하면서 전라남도(제주도 포함)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입선자가 되었고, 1936년 제15회 전람회에 <서귀항>을 출품하여 두 번째 입선했으며, 1938년 제17회 전람회 에서 <해녀>가 세 번째로 입선하였다.
김인지는 조선미술전람회 세 번의 입선을 계기로 1939년 11월 제주농업학교 도서과 강사로 초빙되면서 학생들과 일반인을 상대로 계몽활동을 하였다. 해방이 되자 제주북국민학교 교장, 1947년 제주도 총무국 학무과장을 역임하였고, 1948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제주의 풍물화 30점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4·3사건과 한국전쟁의 혼란을 넘어 1955년 2월 제주도미술협회를 결성하여 초대 회장이 되었다.
<해녀> 작품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그 사진만 남아 있다. 당시 조선의 인쇄술 사정상 흑백이어서 안타깝지만 사진으로 남은 <해녀>를 보면 두껍게 물감을 바르고 넓게 색상으로만 면 처리하는 기법의 그림임을 알 수가 있다. 멀리 섶섬이 보이고 해안가에서는 삼각형의 안정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서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불턱에서 불을 쬐고 있는 해녀들의 모습이 추위에 시린 듯이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족세눈 물안경이다. 당시 제주해녀들은 물안경이 귀해서 맨눈으로 물질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징과 의의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김인지의 <해녀> 가 입상하자 당시 비평가 김복진은 “<해녀>는 다시 가감 을 허락하지 않을 만치 통합된 가작”이라고 평했다.
참고 문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60년사》, 2008.
필자
김유정(金唯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