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등에 붙은 전복을 딴 해녀
정의
대포 마을의 두 해녀가 전복을 많이 땄던 여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
내용
대포 마을에 서로 이웃하면서 물질을 같이 다니는 두 해녀가 있었다. 어느 날 두 해녀는 대포 해안 ‘검주아리깍’이라는 바다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전복을 캤다. 해녀 혼자서는 지고 올 수 없을 정도로 전복을 많이 캤던 것이다. 그래서 두 집에서 각각 밧갈쇠(밭 가는 데 이용하는 황소)를 한 마리씩 데리고 가서 전복을 한 바리씩 가득 싣고도 남아서 장남들이 등짐 한가득 지고 돌아왔다.
다음 날 해녀들은 “어제 많이 캤다고는 해도 우리가 캐던 생복이 남아 있으니 거기 가서 캐자.”고 하여 다시 전날 캤던 여에 가 보았다.
그런데 자신들이 어제 전복을 캤던 여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제는 소에 싣고도 남아 장정이 등짐을 질 정도로 많이 캤는데 바로 이튿날 여가 없어지니 해녀들은 의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된 해녀들은 누워 있는 고래의 등에 붙어 있는 전복을 캤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고래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다.
해녀들 사이에는 두 해녀가 “고래등을 긁었다.”고 알려졌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래 등에 붙어 있는 전복을 긁었다는 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물질을 잘하는 해녀들에게 “고래 등이나 긁었는가?”라고 말하곤 한다.
특징과 의의
제주도의 바다밭이 풍요로웠을 때에 해산물이 얼마나 풍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또한 해녀들의 물질 기량이나 역량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물속에 잠기기도 하는 여의 속성을 간파하고 바다 지리와 생태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력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복을 많이 캔 두 해녀의 일화에서 탄생한 “고래 등을 긁었다.”는 관용적 표현이 오랜 세월 동안 해녀공동체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면서 전승되는 점도 이채롭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서 우러난 언어 유산을 통해서 언어를 부리는 사람들의 정신적 가치와 문화적 전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참고 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9-3》, 1983.
필자
양영자(梁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