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용궁올레


용궁올레_신천리_2022_제주학연구센터

정의

용궁으로 들어가는 올레, 즉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얽힌 이야기.


내용

성산읍 신풍리 바다에는 남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목, 대문인 용궁올레가 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 때는 정의향교에서 이곳에 찾아와 용왕에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용의 머리처럼 생긴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이곳을 ‘용머리’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이 용머리에 당堂이 있었다. 용머리 앞바다는 물이 깊고 일직선으로 기다랗고 깊은 절벽 바위가 형성되어 있어 경치가 좋은데 유독 그 부분만 물이 파랗다. 이곳이 바로 용궁으로 들어가는 올레이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답고 다른 곳에 비해 물속이 매우 깊을 뿐만 아니라 용궁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라 하여 신성시해 왔기 때문에 해녀들이 무서워서 함부로 범하지 못해왔다. 그래서 해녀들이 물질을 잘 안 갔으므로 전복이나 해산물이 굉장히 많았다.
<용궁올레> 이야기는 신풍리에 살았던 송씨 해녀가 바다에서 무자맥질하며 전복을 캐다가 실수하는 바람에 용궁에 갔다가 겨우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다.
옛날 신풍리 송씨 해녀만은 용궁올레에 가서 많은 해산물을 채취해 온 때가 있었다. 이 해녀를 ‘송댁이, 송댁이’라 불렀는데 물질을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을 뿐 아니라 용감하여 무서워하는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송씨 해녀가 용궁올레에서 물질을 하고 있었는데 큰 전복 하나가 보였다. 그 전복은 너무 깊은 물속에 있어서 숨이 모자라 따지 못할 것 같았으나 욕심을 내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송씨가 빗창으로 전복을 찌르는 순간 그만 정신이 아찔해 버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햇빛이 쨍쨍 비치고 강아지 한 마리가 왕왕왕 짖었다. 어서 오라는 듯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따라 송씨 해녀가 좇아 들어갔다. 그곳은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동남동녀를 비롯하여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호화로운 집들이 즐비한 별천지였다. 송씨 해녀가 ‘이런 세상도 있을까.’ 생각하며 사방을 둘러보는데 잘 차린 여자가 다가섰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저는 정의고을 신풍리에 사는데 물질하러 와서 전복을 캐다가 정신이 아찔하여 깨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는 남해 용궁이오. 세상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곳인데 당신이 여기 온 것을 우리 용왕이 알면 돌아가지도 못하고 죽고 말 것이오. 내가 당신을 봐줄 테니 어서 요 길로 해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시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인간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소.”
“그게 뭡니까?”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송씨 해녀는 알려준 길로 인간 세상으로 향하면서도 다시 한번 아름다운 용궁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에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앞이 캄캄해져 버렸다. 이때, 송씨 해녀 앞에 부리부리한 눈을 한 용궁 수문장이 툭 나타났다.
“감히 어떻게 여기엘 왔느냐?”
송씨 해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기까지 온 사연을 말하고 제발 살려만 주십사고 간절히 빌기 시작했다.
“제가 인간 세상에 나가지 못하면 집안의 늙은 부모가 걱정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죽어버리면 늙은 부모님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송씨 해녀는 여든 살 난 시어머니와 아흔 살 난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살려서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여기는 한번 들어오면 세상 사람이 나가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은 들어오지를 못하는데 인간이 남해 용궁에 와서 모두 부정을 시켜버리니 참말로 살려 돌려보내는 법은 없는데 아, 늙은 부모가 있다고 하니 형편이 딱해서…… 나도 늙은 부모가 있으니…….”
수문장은 옆 사람과 소곤소곤하더니 감히 용궁을 침범 한 자를 마땅히 죽여야 하지만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기에 보내준다며 나가라고 하였다. 수문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송씨 해녀가 용궁에 들어올 때 처음 만났던 강아지가 나타났다. 그 강아지 뒤를 졸졸졸졸 따라서 나와 보니 바로 전복을 캐기 위해 들어갔던 ‘용궁올레’였다.
송씨 해녀가 용궁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문은 퍼져나가 그 후로는 이곳을 ‘용궁으로 가는 대문’이라고 하여 ‘용궁올레’라고 부르게 되었다. ‘용궁올레’ 바로 옆 물 위에는 10여m 정도의 칼날같이 우뚝한 바위가 하나 솟아 있다. 모양이 칼이 선 듯하다고 하여 ‘칼선ᄃᆞ리’라고 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부정하니 남해용궁에서 칼을 세워 막아놓은 다리[橋]라고 전해진다.


특징과 의의

해녀들은 물질을 하다 종종 목숨을 잃었는데 가까스로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질이나 조업 중 아득히 의식을 잃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바닷속 저세상에 다녀왔다고 믿었다. 그곳은 용궁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풍족한 낙원, ‘이여도’로 인식하기도 했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잘살고 있으리라 믿으며 위로하기도 했다. 용궁올레와 칼선ᄃᆞ리는 이러한 제주 사람들의 관념과 인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지명이며 굿의 본풀이에 그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참고 문헌

성산읍, 《성산읍지》, 2005.
신풍리, 《냇가의 풍년마을》, 2006.
제주도, 《제주도전설지》, 1985.
제주대학교탐라문화연구소, 《제주설화집 성》, 1985.


필자

양영자(梁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