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용궁에 다녀온 만행이 할머니


정의

소섬에서 물질 중 죽은 줄 알았는데 뜻밖에 살아서 돌아왔다는 나이 든 해녀 이야기.


내용

해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연중행사로 미역 해경이 펼쳐진다. 해경 철이 되면 바닷가는 며칠 동안 미역 캐는 해녀들과 캔 미역을 나르는 사람들로 술렁인다. 1940년쯤 소섬 하우목동에도 해경 철이 되자 온통 미역 캐는 해녀들의 인파로 바닷가가 뒤덮였다.
해경 날은 날씨가 활짝 개고 명주바다에 썰물이어서 물질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해녀들은 바다로 몰려들어 한 물거리 물질을 치르고 나와서 불턱에 둘러앉아 불을 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만행이 할머니도 여기에 함께 끼어들어 우스갯소리를 불쑥불쑥 던지곤 했다. 그러다가 다시 물질하기 위해 해녀들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러 망사리에 미역을 가득 채운 해녀들 이 줄줄이 바닷가로 나왔다. 해녀들이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만행이 할머니가 눈에 띄지 않았다. 놀란 해녀들이 바다를 보니 테왁만 둥실 떠 있을 뿐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녀들이 앞다투어 무자맥질해 들어가 물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할머니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닷가에 몰려들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자 숨진 게 틀림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두어 시간쯤 흘렀을 때였다. 만행이 할머니가 귀신같이 물 위로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분명히 만행이 할머니인데 어쩐 일인지 머리는 빡빡 깎여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했다.
할머니는 정신을 가다듬더니 그 경위를 찬찬히 털어놓았다. 전복을 캔다고 열한 길쯤 되는 물속에 들어가니 우둥퉁 살찐 전복이 보였다. 빗창을 찔러 꺼내려고 했는데 전복이 워낙 커서 떼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하면서 온몸이 찌르르 전율하였다. 그때 할머니 눈앞에 순간 놋종지(놋잔)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놋종지가 자기를 따라오도록 시늉하여 쫓아가니 눈앞에 훤칠한 소나무가 있고 으리으리한 대문이 나왔다. 경건히 배례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스님이 나와서 의연히 할머니를 맞이하더니 이곳에 오면 누구든 머리를 깎아야 한다면서 할머니의 머리를 사정없이 깎았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곳에 오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어서 사바세계로 되돌아가서 좀 지내다가 다시 오시오. 썰물인 지금 서둘러서 돌아가시오.”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저도 모르게 물 위로 솟아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머리는 깎였고 목에는 삭발하던 칼이 빗나간 칼금이 나 있었다.
해녀들과 동네 사람들은 불턱에 둘러앉아 신들린 듯이 만행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만행이 할머니는 기적 같은 일이 있은 후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았는데 일 년 반쯤 더 살다가 이승을 하직했다.


특징과 의의

해녀의 물질은 목숨을 걸고 바닷속을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생업이다. 물질 중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가끔 있었고 나이 든 해녀가 물질하다 위태로움을 겪은 일은 마을, 해녀공동체 도처에 널리 존재한다. 그래서 <해녀노래> 사설에서는 ‘칠성판을 등에 지고 저승길을 오락가락’한다고 노래한다.
물질하다가 돌아오지 않아 사람들이 다들 죽은 줄 알고 체념하고 있는데 만행이 할머니처럼 가까스로 살아난 이야기도 숱하게 전승된다. 물속에서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용궁에 다녀왔다는 설화로 전승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1940년대 실존 인물이었던 만행이 할머니가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비상한 사실에 근거해서 이모저모 이야기가 윤색되어 구전되면서 흥미로운 설화로 정착하였다.


참고 문헌

우도지편찬위원회, 《우도지》, 1996.


필자

양영자(梁永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