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읍리 초가장

제주의 초가는 제주 고유의 새(띠)를 사용하고 있어 지붕의 색감이 다르고 새를 입힌 후 굵은 새끼줄로 지붕을 고정해주기 때문에 더욱 튼튼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강한 햇살과 바람, 습기와 화산회토(火山灰土) 토양 등으로 인해서 이곳에 정주해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척박하고 힘겨운 생존의 노력을 해야 하는 땅이다. 그 중에서도 주거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기본적인 삶의 토대였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게 인식되었으며, 매년 또는 격년으로 지붕의 이엉을 잇기 위해 따로 새왓(지붕 잇는 재료인 새를 경작하는 밭)을 운영한 제주도의 전통에서 이러한 인식을 잘 엿볼 수 있다.

제주도의 민가는 우리나라의 육지부 지역과는 달라서 기후, 가족제도, 신앙과 풍속 등의 문화에 따라 가옥구조와 배치형식 등에서 독특한 주거문화를 형성했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 ‘안거리’를 기준으로 ‘밖거리’,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 가로놓인 ‘목거리(모커리)’ 등이 분할 형태의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 모두 정지(부엌)가 설치되어 있기에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제주에서는 아들이 혼인해서 자녀를 낳으면 부모는 안거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밖거리로 들어가 사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남이 부모를 모시며 대가족을 이루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에서는 부모와 결혼한 자식이 한 울타리 안에서 거주하며 별채로 따로 생활하는 독립적 구조와 가족제도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초가집 구성은 부수적인 여러 공간을 영위해왔는데, 집의 입구에 설치하는 ‘정낭’, 텃밭이라 할 수 있는 ‘우영’, 곡식 등 농작물을 보관하는 ‘고팡’, 소를 먹일 여물을 저장해 둔 ‘눌왓’, 변소 기능과 돼지 축사를 함께 해결하는 ‘돗통시’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며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했던 육지부와 달리 제주도에서는 취사와 난방을 분리해서 정지와 ‘굴묵’이라는 난방 아궁이를 따로 운용한 점이 독특하다. 제주의 초가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붐을 이루게 되면서 점차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되었고, 현재는 성읍민속마을 등 몇몇 전통보존 지역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초가가 사라지게 되면서 제주의 특성을 담고 있던 돗통시도 없어지게 되었다.

제주의 초가는 육지부에서 사용하는 볏짚을 사용하지 않고 제주 고유의 새(띠)를 사용하고 있어 지붕의 색감이 다르고 새를 입힌 후 바둑판 형태로 굵은 새끼줄로 지붕을 고정해주기 때문에 더욱 튼튼했다고 한다. 집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재원과 공정이 있는 것처럼, 성읍리 초가장은 석공, 목공, 토공, 지붕잇기(茅工) 등 4개 부문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목공인 홍원표 기능보유자등 4명의 보유자가 중심이 되어 성읍마을 초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초가 짓는 과정

‘정초하기-기둥 박기-지붕틀 만들기-지붕 잇기-외벽 쌓기-천장 만들기-내벽 쌓기-마루 넣기-구들 놓기’ 등으로 진행된다. 정초하기는 가로, 세로, 높이 30cm의 돌을 설치한 후 ‘생깃기둥’이나 ‘포짓기둥’을 바로 묻는 것을 말하고, 이 생깃기둥을 건물 중앙 한 개소에, 그리고 밑둥을 묻는 ‘두리목기둥’도 건물의 중요한 곳 두 군데에 박는다.

지붕틀은 ‘내민도리’ 형식과 ‘곱은도리’ 형식이 있으며, 포짓 위에 대들포를 걸치고 포짓의 1/4과 3/4 지점에 동자를 세우고 종포를 걸쳐낸다. 대들포와 외부새에 곱은 나무를 걸치는데 이를 ‘지들포’라고 하며, 종포 중앙에 대공을 세우고 대공 위에 ‘상ᄆᆞ루’를 수평으로 걸친다. 그리고는 기둥, 도리, 보를 맞춘다. 대나무나 장작을 팔모로 깎아서 서리와 직각방향으로 걸치는데, 이를 ‘서실목’이라고 한다.

추녀를 건 다음 서리를 네 귀퉁이에 걸고, 서리 끝에 평고대를 박은 후 서실을 건다. 서실목 뒤에 흙을 치는데 이를 ‘고대흙’이라고 하고, 아래로 흙이 나와서 밑으로 내려오도록 한다. 이어 띠(새)로 지붕을 잇는다. 외벽 쌓기로 서리를 건 후에 현무암으로 벽축을 쌓는다. 장축을 쌓거나 황토를 쌓을 때는 ‘반축’을 쌓는다. 외벽은 160cm, 외도리에서 30cm 정도 낮은 높이로, 벽체의 두께는 45cm, 위는 20cm, 위로 갈수록 얇게 쌓는다. ‘그들복받낭(장귀틀)’이 가운데로, 양옆으로는 3~4개를 걸쳐 동귀틀 사이에 서실을 놓고 흙을 편다. 천장의 두께는 10cm 정도이며, 그들을 제외한 상방, 고팡, 쳇방, 정지 등에는 서리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도록 한다. 그리고 마루와 구들을 놓는다.

초가를 짓기 위해서는 장인들도 목공(木工), 석공(石工), 토공(土工), 모공(茅工) 등이 필요하다. 현재 서귀포시 성읍리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실질적으로 제주 초가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이 뛰어난 분들로, 목공 홍원표, 석공 강창석(康昌石), 토공 김권업(金權業), 모공 강임용(康任龍) 등이 무형유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2008년 4월 18일) 있으며, 각 분야에 전승교육사 1명씩과 전수장학생 1명씩이 지정되어 있어 총 12명의 보존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성읍리 초가장 무형유산 보유자 및 전승인력과 성읍민속마을보존회가 함께 활발한 전승활동을 수행하며 맥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1. 제주특별자치도, **증보판 제주의 문화재**, 1998.
  2. 제주특별자치도, **증보판 화산섬 제주 문화재 탐방,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