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리술

제주도 고유의 향토주 고소리술은 향기롭고 진한 맛과 순한 듯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술을 마시는 흥취가 있고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고소리술 누룩과 오메기떡

제주 전통 민속주로 오메기술과 더불어 고소리술의 맛과 향은 제주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제주 고소리술은 개성 소주, 안동 소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소주로 손꼽을 정도로 그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고소리술은 향기롭고 진한 맛과 순한 듯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술을 마시는 흥취가 있고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고소리술의 유래는 고려 시대 몽고 군의 침략과 연관된다. 몽골군의 주둔지화가 되었던 제주에서 몽골인들의 증류기법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제주도에서도 증류주가 생산이 되었는데, 제주도 최초의 증류주가 바로 고소리술이다. 제주의 고소리술은 오메기술과 같은 밑술을 고소리, 즉 소주를 내리는 도구인 소줏고리를 이용해서 증류해서 빚는 술이다. 고소리를 이용해서 빚는 술이기에 고소리술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특이하다.

©고소리술 빚기

이러한 전통술 제조는 조선 시대 후기까지 번성했으나 1907년 일제에 의해 민간의 술 제조가 통제되기 시작하며 1930년 말부터는 점차 그 명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후 1980년대 들어 우리 전통술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시작되면서 1990년 5월 30일 오메기술이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뒤이어 1995년 4월 20일 고소리술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소리술 기능보유자

당시 고소리술 기능보유자는 이성화 할머니로부터 전통주 제조법을 전수받은 김을정(여, 1925년생)이다. 김을정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의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이후 2020년 김을정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며느리인 김희숙(여, 1959년생)이 2021년 12월 8일 고소리술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기능보유자인 김희숙은 1995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고소리술 전수장학생으로 시작하여 2010년 전수조교로 활동하며 고소리술의 제조기법을 익히고 성읍민속마을에서 3대째 이어온 전통방식으로 고소리술을 빚고 있다. 인공적인 맛과 향을 내기 위한 첨가물 없이 수작업으로만 술을 만들고 있으며, 오래전 한국의 소중한 술 문화인 가양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제주술익는집'을 마련하여 제주도 전통주의 특징을 살린 고소리술을 빚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제주 전통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수교육을 실시하여 200여명이 교육생을 배출했으며, 이수자 1명과 전수생 3명을 중심으로 고소리술의 전통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소리술 만드는 과정

  1. 좁쌀을 6시간 정도 물에 담가 불린다.
  2. 불린 좁쌀을 건져 시루에 쪄서 좁쌀밥을 만든다.
  3. 좁쌀밥과 누룩 가루를 골고루 잘 섞는다.
  4. 항아리에 담고 끓인 물을 식혀 항아리에 붓는다.
  5. 물의 양이 중요한데, 좁쌀 4킬로그램, 누룩 600그램에 물의 양을 8리터로 조절한다.
  6. 항아리 속을 잘 저으면 발효가 되고 물이 생긴다.
  7. 온도를 23도에서 28도를 유지하며 15일 가량 발효시키면 1차 밑술이 만들어진다.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빚어 고소리를 이용해 증류한 술이다. 우선 누룩은 잘게 부숴 멍석에 널어 3일 동안 밤낮으로 둔다. 군내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으로 좁쌀은 6시간 물에 담가 불린다. 불린 쌀을 시루에 쪄 좁쌀밥(고두밥)을 만든다. 좁쌀밥을 펼쳐 놓고 누룩 가루를 골고루 잘 섞는데, 좁쌀밥의 온도가 미지근해야 누룩의 효모가 잘 살아난다. 좁쌀밥과 누룩을 잘 섞은 후에는 항아리에 담근 후 그 속에 100도 이상 끓여서 식힌 물을 붓는다. 이때 물의 양이 매우 중요한데, 물 8리터에 좁쌀 4킬로그램, 누룩 600그램 비율로 한다. 항아리 속을 잘 휘저으면 발효가 되고 물이 생겨난다. 온도는 23도에서 28도 정도 되도록 하고, 15일가량 발효시키면 1차 밑술이 완성된다. 1차 밑술이 완성되면 같은 방법으로 2차 3차 덧술을 만들어 1차 밑술이 있는 항아리가 가득 차게 한다.

고소리술을 만들 때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술을 증류하는 옹기 즉 고소리이다. 제주의 고소리는 다른 지역의 고소리에 비해 그 형태나 옹기의 두께가 다르다. 우선 제주의 고소리는 고온에 구워 두께가 얇다. 또한 전체적인 고소리의 높이는 낮고 아래쪽이 보다 넓고 둥글게 만들어 끓는 술이 빨리 냉각되게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과거 제주에서는 고소리를 그냥 제작하지 않고 술을 빚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주문 제작했다.

고소리가 마련되면 음지에서 한 달 정도 발효해 잘 숙성된 밑술을 증류할 준비를 한다. 무쇠솥이 눌지 않게 바닥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조금 미지근하게 데운다. 물이 데워지면 숙성된 술을 넣고 팔팔 끓인다. 술이 팔팔 끓어오르면 소주를 고는 고소리를 솥 위에 앉힌다. 고소리를 솥에 얹어 3~4센티미터 정도 겹치는 것이 좋다. 고소리가 솥에 꼭 맞게 앉힌후에는 밀가루를 반죽한 시루번을 붙이거나 헝겊은 이용해 틈 사이에서 김이 새지 않도록 밀봉을 한다. 고소리를 밀봉하는 이유는 발효된 솥에 불을 때면 열이 나서 증기가 올라오는데, 이때 증기가 공기와 섞이면 술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고소리 위에는 찬물을 넣을 수 있는 질그릇인 장탱이를 얹어 역시 시루번으로 밀봉을 한다. 불을 때면서 알코올 증기가 잘 냉각되도록 찬물을 부으면서 온도를 조절한다. 고소리 안에서 알코올 증기가 올라오고 장탱이의 찬물과 만나면서 냉각된다. 그러면 알코올은 이슬로 변해 고소리 주둥이를 통해 투명하면서도 귀한 술이 한 방울 한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주를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력을 조절하는 일이다. 너무 세게 불을 때면 술이 불면서 탄 냄새가 나기도 하고 너무 약하게 때면 소주가 잘 나오지 않게 된다. 불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술맛을 망칠 수도있다. 숨을 쉬기도 어려운 매캐한 연기 속에서 불을 때노라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인내심을 가지고 은근하게 불을 때야 한다.

고소리 술 한 방울에는 그렇게 술 빚는 이의 정성과 혼이 녹아있다. 장탱이의 물은 손으로 만져보면서 따뜻하면 새 물로 교환해 준다. 보통 3번 정도 교환해 주는데, 그 이상 반복되면 술맛이 안 좋게 된다고 한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술을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는데, 술이 아주 싱거워지는 느낌이 들면 술의 증류가 끝나게 된다. 일반 솥으로 한 솥을 하면 500ml의 술이 나오는데, 이때 고소리술의 도수는 35도 이상으로 높다.

고소리를 통해 받아낸 술은 술항아리에 넣고 차고 어두운 곳에 보관해 다시 6개월 이상 숙성시킨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맛과 향이 살아나 세계 명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술맛을 자랑한다.

©소주고리(고소리)

이처럼 인내와 정성을 담아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주의 명주 고소리술. 고소리술은 약간 탄듯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알싸한 향으로 목에서 깨끗하게 넘어간다. 주원료인 좁쌀의 향과 맛이 살아있어 많이 마셔도 자고 일어나면 뒤끝이 없고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쌀 한 톨 재배하기 힘든 척박한 땅, 제주 사람들을 이처럼 가혹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끈질긴 인내와 지혜로 제주만의 독특한 술 문화를 이루어왔다. 쌀 대신 익숙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좁쌀을 이용해 독특한 술을 빚고 이웃과 더불어 즐겨 마시며 고된 삶을 위로하는 지혜를 가졌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땀과 한을 달래주던 제주의 술, 정성으로 빚은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에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한 맛과 향이 은은하게 담겨있다.

©고소리술 누룩

제주 선인들의 삶과 혼이 깃들어 있는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의 명맥을 지키고 면면히 이어나가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과제다. 독특하면서도 향기로운 술맛이 입안에 오래도록 남아 여운을 주듯이 제주의 독특한 삶과 문화가 깃든 제주 전통술의 맛과 향은 현대 제주인들에게 삶과 정신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보배로운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