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농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농요는 제주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밭일노래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농요는 제주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밭일노래이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농요 곡명은 밧 불리는 소리,검질매는 소리, 마당질소리 등 세 편이며, 지정 당시 기능 보유자는 이명숙(여, 1931년생)이다.

제주 지역은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은 좁은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지어왔다.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주로 해왔는데 보리, 밀, 팥, 조 등의 잡곡 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씨를 뿌려서 밭을 밟고 김을 매고 가을이 되면 곡식을 타작하는 일련의 농사 행위는 제주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역이었다. 이러한 농사 행위와 함께 불려진 노동요는 부치는 힘을 돋우거나 기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화산회토에 자연 환경적 조건 때문에 노동과 함께 불려진 농업노동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처럼 제주민요는 일상적인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삶의 소리 특히 노동의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농업노동요는 따비질소리, 밧가는소리, 써레질소리, 흙덩이 부수는 곰베질소리, 밧ᄇᆞᆯ리는소리, 검질매는소리, 마당질소리, 보리홀트는소리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다. 이처럼 다양한 농업노동요 가운데 밧ᄇᆞᆯ리는소리, 검질매는소리, 마당질소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불려진 제주의 대표적인 농업노동요로 제주도무형유산[명칭: 제주농요] 제16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밧ᄇᆞᆯ리는소리[밭밟는노래]

화산회토의 제주토양은 유난히 메마르고 가벼워서 뿌려진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밭에 씨를 뿌리고 난 후 소나 말을 이용해 밭을 밟는 밧 ᄇᆞᆯ리는 작업을 해왔다. 싹이 고루 트고 뿌려진 씨앗이 날리지 않고 땅에 잘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흙을 단단하게 밟아 주어야만 했다.

밧 ᄇᆞᆯ리는 작업은 한두 명의 선창자가 말을 이끌고 사람이 열 명 내외의 마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며 이루어진다. 이러한 작업은 골고루 밭을 밟도록 말을 이끄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바로 노래가 한 것이다. 회초리를 든 말테우리가 목청 높여 선소리를 구성지게 불러대면 뒤를 따르는 마을 사람들은 흥겹게 후렴을 받는다.

밧 ᄇᆞᆯ리는 작업은 다른 농사일과는 달리 소나 말과 함께 이루어지는 작업이므로 동물과 나누는 인간의 교감이 노래 사설에 특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원시 민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통한 자연의 생명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밧 ᄇᆞᆯ리는 노래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명숙 보유자가 선소리를 부르면 김옥자, 김향희가 “어러러러 와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과 같은 훗소리를 받아 불렀다.

밧ᄇᆞᆯ리는소리[밭밟는노래]

어러러 월월 월월 어러러 월월 월월ᄒᆞ민 고개 숙이멍 돌아나온다
어러러러 와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요ᄆᆞᆯ덜아 저ᄆᆞᆯ덜아 구석구석마다 씨난듸 엇이[씨 나온데 없이] 곱이창창 돌돌돌 돌아지멍 멘짝ᄒᆞ게[평평하게] 볼라도렌[밟아달라고] ᄒᆞ는구나
어러러러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수산봉에 뜬 구름은 비가 올 먹구름이 아니더냐
산꼬지[산꼭대기]에 뜨는 해는 마가 가ᄃᆞ와[걷어] 가는 근본이더라
어러러러 월월월월 하 에헤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제석할마님아 요 조랑 ᄇᆞᆯ리건 남뎅이랑[줄기랑] 두자두치
고고리랑[이삭이랑] 나건 덩드렁 마께[빨랫방망이]만씩 나게 ᄒᆞᆸ서
어려려려 아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저 산아래 안개가 끼면 장남 두일뤠 열나흘 논다 ᄒᆞ는구나
사라봉 꼭대기에 벳이 나면 중의 머리가 벗어진다 ᄒᆞ는구나
어러러려 아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물ᄆᆡ 오름 뜬구름은 날씨가 좋아가는 구름[근본]이 아니더냐
큰년아 족은년아 박달곰베[곰방메] 메어들렁
큰 벙에[흙덩이]영 족은[작은] 벙에[흙덩이]여 복삭복삭 ᄈᆞ스멍[빻으면서] 나글라
어러러려 아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요 ᄆᆞᆯ덜아 저 ᄆᆞᆯ덜아 물장오리에서 놀던 ᄆᆞᆯ덜아
아무리 허여도 늬가 허여사 ᄒᆞᆯ 일 노픈 듸 야튼 듸 씨난 듸 읏이 곱 이창창 돌돌돌 돌아지멍 멘짝ᄒᆞ게 ᄇᆞᆯ랑 밧베꼇듸[밭바깥에] 나가 는 게 너의 구실이다
어러러려 아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일소장에서 놀던 ᄆᆞᆯ덜아
이소장으로 나강 물도 먹고 촐도 먹엉 놀자 ᄒᆞ는구나
어러러러러 월 월월월월 와하아 월하량

검질매는소리[밭매는노래]

농사의 풍요를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잡초를 제거하는 일 또한 중요했다. 잡초를 제주 방언으로 ‘검질’이라 하는데, 많은 농사일 중에서도 잡초를 제거하는 검질을 매는 작업은 밭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 위주의 집단 노동이었다. ‘ᄀᆞᆯ갱이’이라는 농기구를 사용하여 검질 매는 작업은 한여름 내리쬐는 햇볕과 싸워야 하는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매우 고달픈 노동이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이 힘든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삶의 한을 삭히기 위해 검질 매면서 자연스레 노래를 불렀다. 그게 바로 검질매는소리다. 노동요의 꽃이라는 검질매는소리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려졌는데, 그중에서도 사대소리는 검질매는소리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사대소리는 짧게 부르는 ᄍᆞ른사대소리와 길게 늘려서 부르는 진사대소리로 나뉜다. 그저 어촌을 중심으로 동부지역에서는 땅이 거칠어 주로 ᄍᆞ른사대소리가 발달했고, 애월읍을 비롯한 서부지역은 비교적 토양이 좋아 길게 늘여서 부르는 진사대소리가 불려졌다. 그런가 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검질 매는 작업에 몰입되었을 때는 여인네들의 손길에 맞춰 노래의 가락도 빨라진다. 그래서 낮 시간은 진사대소리를 느린 가락으로 여유있게 불렀고, 저녁 시간은 ᄍᆞ른사대소리를 불렀다. 노래의 형식은 나이가 많고 가창 능력이 뛰어난 한 명의 선창자와 여러 명의 후창자가 소리를 주고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려진다. 목청 좋은 사람이 구성지게 선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훗소리를 흥겹게 받아낸다. 노래는 여러 명의 일하는 사람들이 보조를 맞춰 일하도록 일체감을 조성하는 한편 현장에서의 즐거움과 신명을 더한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서 노동 작업과 함께 풀고 자신의 고단한 삶과 신세 한탄, 그리고 사랑의 정서를 노랫가락에 실어나르고 있다. 이명숙 보유자가 선소리를 부르면 김옥자, 김향희가 “어긴여랑 상사대로다”라는 훗소리를 불렀다.

검질매는소리(ᄍᆞ른사대소리)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검질[김] 짓고[깃고] 굴너른[골 넓은] 밧듸/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소리로나 우경가게[힘을 쓰자]/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앞멍에[앞밭머리]랑 들어나오곡/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뒷멍에[뒷밭머리]랑 나고나가라/ 어린여랑 상사대로다
ᄒᆞᆫ소리에 두줌 반씩/ 어린여랑 상사대로다
두소리에 석줌 반씩/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곱은쉐 ᄀᆞᆯ갱이[호미]로 박박 메고 가자/어긴여랑 상사대로다
두소리에 석줌 반씩/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ᄒᆞ당[하다] 말민 놈이나 웃나/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모다 듭서 모다 듭서/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제꾼[계원] 어른덜 모다듭서 /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아무리 ᄒᆞ여도 ᄒᆞ고야 말일/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ᄒᆞ당 말민 놈이나 웃나/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일락서산 해 떨어지기 전에/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양끗[양끝] 잡앙 ᄆᆞ깡덜[마치고] 나그릅서/ 어긴여랑 상사대로다

마당질소리[타작노래]

한 해 동안 땀 흘린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 가을, 이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추수의 기쁨을 나누고 보리, 조, 콩 등 수확한 곡식을 타작했다. 요즘은 탈곡기를 이용해 모든 곡식을 손쉽게 타작하지만, 탈곡기가 나오기 이전 제주 사람들은 도리깨를 이용해서 곡식을 타작하곤 했다. 이때 도리깨를 이용해서 곡식을 타작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마당질소리, 또는 타작소리라고 한다. 마당질 작업은 주로 마당이나 밭 한구석에서 이루어졌다. 앞마당에 멍석 가득히 곡식을 널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양편으로 나눠서서 도리깨로 곡식을 내리치며 마당질소리를 부르곤 했다. 한 사람이 선소리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을 받기도 하고 서로 번갈아 가면서 다른 사설을 부르기도 했다. 노래는 노동 동작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하며 힘에 부친 노동의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기에 매우 규칙적이면서 흥겹다. 따라서 마당질소리는 일에 고단함을 잊고 작업에 능률을 올리려는 제주 사람들의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이명숙 보유자가 선소리를 부르면, 김옥자, 김향희가 “어요하여, 어야도 홍아” 등과 같은 후렴을 받아 불렀다.

마당질소리

어야도 홍아/ 어요 하야
어야도 홍/ 어야도 홍아
욜로요레 누게나 앞고/ 어요하야
설룬 정녜 앞일러라/ 어야도 홍아
어야홍아 /어기야 홍아
ᄒᆞᆫ번 때리건 백방울씩/ 어요 하야
두번 때리건 천방울씩/ 어야 홍아
두드렴시민 굴축난다[줄어든다]/ 어야도 하야
상일에도 호사[좋은일]가 있느냐/ 어야 홍
ᄒᆞᆫ착 가달[다리] 우트레 들르멍/ 어기야 홍아
생곡이여 진곡이여/ 어기야 홍아
어요 하야/ 어야 홍아
우는 애기 젓[젖]을 준덜 /어야도 홍아
어야 홍아/ 어기야 홍아
나놀레랑 산넘엉 가라/ 어요 하야
나놀레랑 물넘엉 가라/ 어야 홍아
물도 산도 난 아니 넘엉/ 어기야 홍아
요짓 올레 지넘엉[넘어서] 간다/어야도 홍아
어요 하야 / 어요 하야
ᄆᆞ를[마루] ᄆᆞ를 ᄆᆞ를을 주라/ 어요 하야
상일에도 ᄆᆞ를이 있저/어야도 하야
좁은 목에 베락치듯 /어야도 홍아
너른[넓은] 목에 번개치듯/어기야 홍아
요동산을 때리고 나가자/어야도 하야
어야 홍아/어야도 홍아
저하늘에 뜬구름아/어기야 홍아
비 쌓였나 눈 쌓였나/ 어야도 홍아
어요 하야 /어야도 홍아
비도 눈도 난 아니 쌓연/어기야 홍아
소리 멩창만 들고나간다/어야도 홍
어야도 하야/ 어야도 홍
어야도 홍

힘든 일을 여럿이 함께하면서 불렀던 제주 농요. 노래 속엔 제주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이 깃들어있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농사일에 힘을 돋우고 기운을 이끌어 낸 청량제와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급속한 산업 환경의 변화로 인해 노동 현장은 사라지고 구연의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노래는 거친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제주 사람들의 지혜의 유산인 것이다. 아울러 제주농요는 제주 사람, 제주 땅에서 만들어졌다는 특수성과 더불어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해 일반인들에게 불려진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간직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2002년 5월 8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농요의 곡명은 밧 ᄇᆞᆯ리는 소리, ᄍᆞ른사대소리, 마당질소리 등 세 편이며, 기능 보유자는 이명숙(여, 1931년생)이다. 이후 이명숙 보유자가 세상을 떠나자 김향옥(여, 1952년생)이 2019년 11월 22일 2대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현재 보유자를 중심으로 전승교육사 김향희(여, 1961년생)과 10명의 전수 장학생을 확보하여 전승 체계를 마련하고, 제주농요전수관과 제주무형유산전수교육관을 활용하여 제주 농요의 전승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현장성을 살린 전수 교육, 정기적인 기획 공연, 일반인 대상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제주 농요는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재지정되어 있다.

제주 농요는 밭농사가 지배적이었던 제주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 속에 불렸던 노래로 고단한 삶을 극복해온 지혜의 유산이자 노동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이기에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