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대소리

진사대는 가락이 길고 유장하며 장식음이 발달하고 가락이 기교적인 것이 특징인 노동요이다.

©진사대소리 진선희 보유자

제주도는 화산섬이었기에 예로부터 논농사보다 조, 보리, 밀 등 밭농사가 대부분이었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밟아주고 여름이 되면 밭에 김을 매고 가을이면 타작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힘든 고역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 일하면서 불렀던 것이 노동요이다. 노동요는 일의 고단함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시름을 달래주었던 청량제 같은 역할을 했다.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노동요는 밭을 매면서 부르는 검질매는소리이다.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검질매는소리는 제주도 전역에서 널리 불리는 사대소리와 특정 지역에서 불리는 아웨기, 홍애기, 더럼소리, 상사디야요, 담불소리, 용천검 등 다양하다. 사대소리는 가락의 장단에 크게 진사대, 중간사대, ᄍᆞ른사대로 나뉜다. 진사대는 가락이 길고 유장하며 장식음이 발달하고 가락이 기교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서 전해져오는 진사대소리는 2005년 10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사대소리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밭을 매는 일은 고됨 그 자체였다. 이와 같은 고통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검질매는소리를 불렀는데, 작게는 15명에서 많게는 30여명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수눌음 검질을 매면서 다함께 부르는 진사대소리는 그 풍경만으로도 웅장하다. 진사대소리는 가락이 기교적이어서 가창 능력이 있는 소리꾼만이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소리꾼의 수준을 재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진사대소리의 사설은 밭매기의 지루함을 달래거나 밭매는 일 독려, 여성의 고달픈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ᄍᆞ른사대의 사설을 가져다 부르기도 한다.

진사대소리의 분포 지역은 넓은 경작지가 있었던 중산간 마을이 대부분이다. 구좌읍 덕천리, 조천읍 선흘리, 와흘리, 와산리, 성산읍 삼달리, 표선면 가시리, 남원읍 신례리와 하례리, 애월읍 중산간 지역에서 널리 전승되었다. 특히 토질이 좋고 경작지가 넓은 애월읍 중산간인 장전, 고성, 소길, 용흥, 납읍리 등지에서 더욱 발달하였다. 그 까닭은 넓고 기름진 땅의 경우 김매기 작업이 수월하다는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꾼의 가창 능력을 최대한 펼쳐 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래 사설도 자유롭게 엮을 수 있기에 음악적인 선율 또한 세련되고 우아하며 웅장하다. 그야말로 노동예술로서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리라 할 수 있다.

진사대소리는 가창자의 호흡과 빠르기에 따라 구분된다. 숨을 크게 세번 내쉴 동안 세 굽이로 엮어 부르는 소리를 싀굽이진사대라 하고, 네 굽이로 엮어 부르면 늬굽이진사대라고 한다. 아무나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가락이 길고 유장한 진사대소리, 주로 마을에서 유능한 소리꾼이 불렀던 검질매는소리로 애월읍 중산간 지역의 진사대소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워낙 길어 이 지역의 중간사대가 다른 마을의 진사대소리와 맞먹을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납읍리에서 전승되는 진사대소리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예로부터 납읍리는 풍광이 뛰어난 금산을 중심으로 시조창을 하던 선비들이 많았다. 선비들이 불렀던 시조창 창법이 민요 속으로 들어와 선율이 유연하고 아름다운 납읍리의 진사대소리, 그런 까닭에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소리꾼은 진선희로 1945년 애월읍 장전리에서 태어났다.

소리 잘하기로 소문난 아버지 진성효와 어머니 강신생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에 애월읍 용흥리로 이사했다. 아홉 살에는 아기 업개로 밭에 나가서 할머니가 부르는 검질매는소리를 귀동냥하며 배웠다. 열 살 무렵부터는 김매는 수늘음에 직접 참가하여 온종일 김을 매면서 직접 진사대소리를 불렀다. 열다섯 살에는 밭벼인 산디와 조밭에 김을 매면서 진사대소리를 유창하게 불렀고, 옆밭에 소리꾼들과 소리를 겨루었다. 맑은 소리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요도 유창하게 부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진선희는 어버이날 행사, 경로잔치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마음껏 기량을 펼쳤고, 재능을 인정받았다. 2004년 탐라문화제에는 하귀리의 ‘귀리겉보리농사일소리’ 공연에서 사대소리를 불러 하귀리 출연팀이 민속경연 최우수상 수상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진사대소리는 한 사람이 먼저 부르면 일정한 지점에서 여러 사람이 훗소리를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다 같이 부르고 마친다. 노동의 상황에 따라 ᄍᆞ른사대, 추침사대, 진사대, 막바지사대가 순차적, 교차적으로 불리는데, 추침사대는 김매는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짧게 수차례 반복되기도 한다. 이때 연행방식의 묘를 잘 살려야 검질매는소리의 멋을 살릴 수 있다.


진사대소리

현재 애월읍 납읍리에서 전승되는 진사대소리를 들어보자.

사대 불렁 검질매자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검질 짖고 골 ᄂᆞᆽ 인 밧듸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앞멍에야 들어오라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뒷멍에랑 물러가라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곱이곱이 청청곱이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노픈 산에 눈 날리듯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야튼 산에 재 날리듯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ᄒᆞᆫ소리에 두 좀 반씩 어헝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대천 바당에 절 밀어오듯 어허어야
아에엉어엉 어으어엉 어이도리랑 사대로구나
우리 어멍 날 낳던 날은 어떤 날에
나를 흐으으응 낳앗던고 요 검질매나 사대로구나
(추침사대: 쥐똥배똥 배앞이 완방진방 들어오고 비옥간장 석은 물은 골골마다 ᄂᆞ리는구나 얼싸 얼싸 아이고 잘 ᄒᆞᆫ다)

진선희의 말에 의하면 진사대소리는 일을 시작하면서 주로 오전에 부른다. 오후에는 ᄍᆞ른사대로 바꿔부르며 밭매는 일을 독려한다. 진사대소리는 의미 있는 사설을 앞뒤로 배치하고 중간에 의미 없는 여음이 계속 반복되어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그런 까닭에 중간에 “굼벵이 밥을 먹었느냐 목이 꺼끌꺼끌 ᄒᆞ냐 경헤도 얼싸 얼싸 잘 넘어간다”, “요 떡은 웬 떡이냐 저 시루떡이냐 동방에 주얼(등에)이냐 서방에 재열(매미)이냐” 등 흥을 돋우는 가락의 사대가 끼어들기도 하는데 이를 추침사대라 한다. 밭일하는 사람들의 흥과 신명을 돋우는 추침사대는 진사대 형식을 변형한 노래이다. 길게 끄는 창법을 쓰다가 굽이를 돌리는 싀굽이 늬굽이 사대로 바뀌는데, 굽이를 바꿀 때는 해학적인 추임새를 사용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권력적 효과와 청량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권력소리라고도 하는데 진사대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어 부르는 경우도 있다. 저녁이 다 될 무렵 아직 덜 매어진 밭이 있을 경우에는 김매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빠른 가락으로 막바지사대를 불러 일을 재촉하기도 하였다.

사대소리의 연행 방식은 노동공동체의 화합과 집단의 신명을 위해 소리와 놀이가 통합되는 독특한 미적 양식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의 기능과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된 제주의 노동요, 그 중에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진사대소리는 가락이 길고 유장하여 제주만의 독특한 미적 양식을 보여준다는 데 그 의미가 깊다. 화산섬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 정서가 살아 있는 진사대소리, 제주를 대표하는 노동공동체 문화 상징으로 후세에 길이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진선희 소리꾼은 젊은 사람들에게 진사대소리를 전수하고자 하는 남다른 의욕을 가지고 꾸준히 전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전승교육사 김명순, 강순희, 전수장학생 박선희, 진을생, 김이숙, 일반전수생 진창익, 양경자, 김은지, 이경미 등을 중심으로 매주 전수관에 모여 전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무형문화대전, 탐라문화제 등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지역 축제 찬조 출연, 노인복지회관 노래 봉사, 지역학교 민요교실 운영 등 대외 활동을 통해서도 진사대소리의 올곧은 전승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