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제주해녀_고내리_2018_양종훈
개관
해녀는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말한다. 달리 ‘잠녀, 잠수’라고도 한다. 1995년 제주도교육청이 초등학교 4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를 제작할 때 교사와 도민들 사이에서 ‘해녀, 잠녀, 잠수’ 중 무엇을 표제어로써야 할지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그 이듬해인 1996년 제주도에서 《제주의 해녀》를 출간하면서 다시 한번 크게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물질하는 여성을 가리켜 ‘해녀, 잠녀, 잠수’라 한다. 물질하는 여성들은 스스로를 ‘ᄌᆞᆷ녀, ᄌᆞᆷ수’라 한다.
해녀는 18세기 초 《숙종실록》에 나온다. 그 이래로 해녀가 계속해서 쓰이게 되면서 점차 일반화되었다. 해녀가 공식 명칭으로 쓰인 것은 1920년에 조직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으로 볼 수 있다. 그 이후 행정기관의 공문이나 조례, 문화재 명칭 등에서 해녀가 쓰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설치 및 운영 조례>(2008),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2009), <해녀노래>(1971,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 도구>(2008,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 <제주해녀어업>(2015, 국가중요어업유산), <제주해녀문화>(2016,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해녀>(2017, 국가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어업시스템>(2023,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이 그 예이다.
해녀가 물질하는 여성이라면 물질하는 남성을 칭하는 용어는 ‘해남海男’이다.
잠녀라는 용어는 17세기 초 이건의《제주풍토기》(1628)에 처음 기록되었다. 관찰자 또는 기술자에 의해 쓰이는 용어다. “우린 ᄌᆞᆷ녀마씸.”을 “우리는 잠녀요.”라고 대역해서 기술하므로 ‘잠녀’는 ‘ᄌᆞᆷ녀’의 대응 표준어라 하겠다.
잠수는 1940년대 후반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사용은 1950년 한국잠수어업수산협동조합이 결성된 이후부터 나타난다. ‘ᄌᆞᆷ녀’가 한자어 ‘잠녀’에서 비롯된 용어라면 ‘잠수’는 그 반대로 ‘ᄌᆞᆷ수’를 한자어 ‘잠수’로 옮긴 것이다. ‘아주머니 수嫂, 형수 수嫂를 쓴 ‘잠수’가 국어사전의 표제어로 오른 것은 1991년 금성판 《국어대사전》이 처음이다.
‘ᄌᆞᆷ수’는 민요나 무가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써 온 용어로 보인다. 특히 <칠성본풀이>에 나오는 ‘일곱ᄌᆞᆷ수’를 그 근원으로 말하기도 한다. <칠성본풀이>에서는 불공을 드려 태어난 딸이 중의 자식을 임신하여 돌함에 갇혀 쫓겨나고 제주도에 도착한다. 이 딸이 뱀으로 변신하여 딸 일곱을 낳았는데 그 딸들도 모두 뱀이었다. 이들 모녀는 각각 신이 되었는데 일곱째 막내딸이 집 뒤에 있는 주저리 밑 기왓장 아래로 들어가 ‘밧칠성’이 되고 어머니는 고방의 쌀독으로 들어가서 곡물을 지켜 부자가 되게 하는 ‘안칠성’이 된다는 내용이다. 딸 일곱이 ‘일곱ᄌᆞᆷ수’다. ‘ᄌᆞᆷ수’는 ‘ᄌᆞᆷ수굿, ᄌᆞᆷ수질’처럼 합성어 또는 파생어로 쓰이기도 한다. ‘ᄌᆞᆷ수’는 대체로 제주 동부지역에서 많이 쓰는 편이다. ‘ᄌᆞᆷ수’를 표준어로 대역하면 잠수가 된다.
‘ᄌᆞᆷ녀’는 문헌 어휘 잠녀를 제주화 해서 쓰는 용어다. 한자 잠潛은 전통적으로 [ᄌᆞᆷ]으로, 여女는 [녀]로 읽는다. 물질하는 여성 스스로도 ‘ᄌᆞᆷ녀·ᄌᆞᆷ녜’라 한다. ‘ᄌᆞᆷ녀굿’, ‘ᄌᆞᆷ녀옷’, ‘ᄌᆞᆷ녀질’처럼 합성어 또는 파생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체로 제주 서부지역에서 많이 쓰는 편이다.
해녀는 물질 기량에 따라서 다양하게 부른다. “물에 들 땐 ᄒᆞᆫ 빗이고 나올 땐 천칭만칭 구만칭이다(물에 들 때는 한빛이고 나올 때는 천층만층 구만층이다.).”라는 해녀 속담이 있다.물질 갈 때는 복장 등 차림새가 거의 같은데 나올 때는 물질 기량에 따라 수확량이 천차만별이라는 말이다. 해녀는 그 기량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은 물질 기량을 상중하 세 부류로 나눌 때 ‘상’의 부류에 속하는 해녀, ‘중군’은 물질 기량이 중간쯤 되는 해녀, ‘하군’은 물질 기량이 떨어지는 해녀를 말한다. ‘상군’은 달리 ‘상ᄌᆞᆷ녜, 상ᄌᆞᆷ수, 왕ᄌᆞᆷ녜, 큰ᄌᆞᆷ네’ 등으로 말하고, ‘중군’은 ‘중ᄌᆞᆷ녜, 중ᄌᆞᆷ수’로, ‘하군’은 ‘깍ᄌᆞᆷ녀, 눈질레기, 돌파리, 돌ᄑᆞ레, 똥군, 볼락ᄌᆞᆷ녜, 소군, 족은ᄌᆞᆷ녜, 톨파리, 하ᄌᆞᆷ녜, 하ᄌᆞᆷ수’등 다양하게 부른다 .‘상군’은 ‘상군바당’에서, ‘중군’은 ‘중군바당’에서 물질한다. ‘상군바당’은 ‘중군바당’보다 수심이 깊다. ‘상군’ 위에는 ‘대상군’이 있다. 물질 기량이 아주 뛰어날 뿐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해녀를 말한다. 대상군은 한무리에 한사람씩은 있는데, ‘고래상군’ 또는 ‘되짐베기’라고도 한다.
물질하는 장소에 따른 이름으로 ‘ᄀᆞᆺᄌᆞᆷ녀’가 있다. ‘ᄀᆞᆺᄌᆞᆷ녀’는 ‘갯가에서 물질하는 잠녀’라는 뜻이다. 물질 배운 지 얼마 되지 않고 기량도 떨어져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물질한다. ‘ᄀᆞᆺᄌᆞᆷ녀’는 대체로 ‘하군’에 해당하는데 달리 ‘ᄀᆞᆺᄌᆞᆷ녜, ᄀᆞᆺᄌᆞᆷ수’라 한다. ‘ᄀᆞᆺᄌᆞᆷ녀’, ‘ᄀᆞᆺᄌᆞᆷ녜, ᄀᆞᆺᄌᆞᆷ수’의 ‘ᄀᆞᆺ’은 ‘가장자리’ 또는 ‘가’라는 뜻이다. 갯가가 벼랑으로 된 대정읍 일부 지역에서는 ‘ᄀᆞᆺᄌᆞᆷ녀’ 대신에 ‘덕ᄌᆞᆷ녀’라 한다. ‘덕’은 바닷가 큰바위를 말한다. ‘덕’이 있는 바닷가에서 물질하는 잠녀라는 뜻이다. 달리 ‘덕ᄌᆞᆷ녜’라 한다.
나이에 따라 ‘애기ᄌᆞᆷ녀’와 ‘할망ᄌᆞᆷ녀’로 나눠 부른다. ‘애기ᄌᆞᆷ녀’는 어렸을 때부터 물질을 배워서 물질하는 아기 잠녀를 말한다. ‘애기ᄌᆞᆷ녀’는 달리 ‘애기ᄌᆞᆷ수’라 한다. ‘애기ᄌᆞᆷ녀’ 가운데서도 물질 기량이 뛰어나면 ‘애기상군’이라고 부른다.
‘할망ᄌᆞᆷ녀’는 ‘할망바당’에서 물질하는 나이가 많은 잠녀를 말한다. ‘할망바당’은 수심이 얕고 해산물이 풍부하다. 해산물이 풍부한 가까운 바다에 일정 구역을 정하여 ‘할망바당’이라 하고, ‘할망ᄌᆞᆷ녀’로 하여금 물질하게 한다. 수확물 채취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에 대한 대우이자 배려이다. 경로효친을 읽을 수 있다.
채취하는 해산물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다. ‘빗ᄌᆞᆷ녀’, ‘비바리’가 그것이다. ‘빗ᄌᆞᆷ녀’의 ‘빗’과 ‘비바리’의 ‘비’는 전복을 뜻하는 고유어다. 이 ‘빗’과 ‘비’는 고려 때《계림유사》에 나온다. ‘빗’과 ‘비’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빗창(전복 따는 도구), 암핏(암전복), 수핏(수전복)’처럼 합성어나 ‘비바리’처럼 파생어에 나타난다. ‘빗ᄌᆞᆷ녀’는 ‘전복 따는 잠녀’로, 대체로 ‘상군’에 속한다. 문헌 용어를 빌리면 ‘채복잠녀採鰒潛女’, ‘채복녀採鰒女’에 해당한다. 한편 ‘비바리’는 ‘비+-바리’로 분석할 수 있다. ‘-바리’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서, ‘그러한 사람’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결국 ‘비바리’는 ‘전복 따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 된다. 근래에 그 의미가 변하여 ‘처녀’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비바린 ᄆᆞᆯ 똥만 뀌어도 웃나(처녀는 말 똥만 뀌어도 웃는다.).”는 속담이 그 예이다. ‘고망ᄌᆞᆷ녜’와 ‘되짐베기’라는 이름도 있다.
‘고망ᄌᆞᆷ녜’는 ‘구멍 잠녀’의 뜻으로, 집에만 있다가 어쩌다 물질 나온 잠녀를 말한다. 달리 ‘고망ᄌᆞᆷ수’라 한다. ‘되짐베기’는 ‘채취한 해산물을 도로 가서 져 와야 할 정도로 물질 기량이 뛰어난 잠녀’를 말한다. ‘되짐베기’의 ‘되-’는 ‘되살리다, 되새기다’의 ‘되-’와 같은 것으로 ‘다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이 ‘고망ᄌᆞᆷ녜’와 ‘되짐베기’는 물질 횟수나 채취물의 분량에 따른 명칭인 셈이다.
문헌에 나타나는 명칭으로는 ‘잠녀, 채곽녀, 채곽잠녀, 채복녀, 채복잠녀, 해녀, 해채인’을 들 수 있다.
잠녀_이건 <제주풍토기>_≪역주제주고기문집≫_제주문화원 제공
잠녀라는 용어가 처음 언급된 것은 이건의 《제주풍토기》(1628)로 보인다. 그 이후 이증의 《남사일록南槎日錄》,이형상의 《병와집甁窩集》, 신광수의 《석북집石北集》, 이원조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장인식의 《탐라지耽羅誌》,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淸史》 등에서도 ‘잠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이익태의 《지영록知瀛錄》에서는 ‘잠녀’를 미역 캐는 잠녀와 전복 따는 잠녀로 구분하였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서는 물질하는 잠녀를 그렸다. 김춘택은 <잠녀설潛女說>이란 한문수필을, 신광수는 <잠녀가潛女歌>라는 한시를 짓기도 하였다.
잠수녀는 조관빈의 한시 <탄잠수녀歎潛水女>에 나오며 ‘채곽녀’를 비롯한 ‘채곽잠녀, 채복녀, 채복잠녀’는 이익태의 《지영록》에 나오는 용어들이다.
해녀는 숙종 40년 《숙종실록》(1714) 8월 3일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촌부와 해녀들은 생선과 채소를 가지고 와서 매일 아침 관문館門 밖에 시장을 벌여 놓고 서로 사고판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 ‘해녀’는 1791년 위백규의 <금당도선유기金塘島船遊記>라는 기행문에도 언급된다.
“통포에서 전복 따는 해녀를 구경하였다. 발가벗은 맨몸에 ‘테왁’을 차고 깊은 바다로 개구리처럼 거꾸로 빠졌다가 오리처럼 솟아오르는 모습 바로 볼 수 없더라.”는 구절에 해녀가 등장한다.
해채인은 바닷말을 따는 사람으로, 중종 5년 《중종실록》(1510) 2월 12일 기사와 선조 9년 《선조실록》(1576) 4월3일 기사에 언급되었다. 1910년 《황성신문》 5월 1일 3면 기사에서도 제주도 해채인에 대한 기사가 있다.
행정기관에서는 ‘나잠어업인, 어업종사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연도별 해녀 추이 현황(제주도, ≪해양수산현황≫, 단위: 명)
연도 | 해녀 수 | 연도 | 해녀 수 |
1957 | 27,553 | 2000 | 5,789 |
1960 | 19,319 | 2005 | 5,544 |
1965 | 23,081 | 2010 | 4,995 |
1970 | 14,143 | 2015 | 4,377 |
1975 | 8,402 | 2020 | 3,613 |
1980 | 7,804 | 2021 | 3,437 |
1985 | 7,469 | 2022 | 3,226 |
1990 | 6,827 | 2023 | 2,839 |
1995 | 5,886 |
오늘날에는 ‘해녀’가 일반화된 명칭이다. 제주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해녀를 내세울 때 해녀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해녀 수는 날로 감소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이후 해녀 수의 추이를 보면 위 표와 같다.
해녀 수는 위의 표 ‘연도별 해녀 추이 현황’에서 보는 것처럼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1960년대 해녀 수가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확인할 수 없다.
해녀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는 어떠한가. 환경오염 등으로 황폐화의 길로 내닫고 있다. 바다에 나가도 잡을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해녀학교에서 양성하고 배출하는 새내기 해녀들은 ‘해녀’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해녀들과의 갈등 문제 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해녀와 해녀문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해녀들의 자긍심 또한 한층 높아진 것이 확실하다. 문화유산 지정만으로 끝낼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2024년 5월 25일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와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아홉 해녀에 대한 ‘은퇴식’은 해녀들의 명예는 물론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문헌
강대원, 《해녀연구》, 한진문화사, 1970.
고유봉, 《제주島해양수산사》, 도서출판 각, 2011.
김영돈, 《한국의 해녀》, 민속원, 1999.
안미정, 《한국 잠녀, 해녀의 역사와 문화》, 역락, 2019.
좌혜경·서재철, 《제주해녀》, 대원사, 2015.
필자
강영봉(姜榮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