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한남리 본향당굿은 마을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2월 12일 한남리 본향당에서 행해지는 굿이다. 한남리 본향당굿은 최근까지 선굿으로 규모 있게 치러지는 점, 씨족에 의한 상·중·하단골의 전통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유지된다는 점, 중산간 마을이지만 영등굿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점 등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2021년 6월 4일 제주특별자치도 향토무형유산 제10호로 지정됐다. 이에 앞서 본향당굿이 행해지는 한남리 본향당은 2020년 5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제30호로 지정된 바 있다.
전승 배경
한남리 본향당은 목호의 난 발생 시기인 공민왕 23년(1374년) 이전에 석곡촌이 형성됐고 이후 허좌수 허별감이 1550년경부터 본향터에 자리를 잡았다. 본향당에는 수백 년 된 폭낭(팽나무) 아래 당팟(당밭)이 있다. 한남리 설촌 당시부터 무속신앙에 의거,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에는 속칭 올빼미숲 근처 설벽 앞에 조성되었다가 이후 속칭 고비당ᄆᆞ루로 옮겨 졌으며, 1820년 경 현 위치로 이동하여 정착되었다고 전한다.
내용 및 특징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망동산 북쪽의 속칭 ‘당팟’이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한남리 본향당은 허좌수, 허별감, 알당한집, 산신, 영등하르방 등 다섯 신위를 모시며, 매년 음력 2월 12일에 마을의 부녀자들이 심방을 모셔다가 제단에 떡과 음식을 올리고 가족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을 행하고 있다.
한남리 본향당굿은 현씨, 고씨, 오씨 가의 종부가 각각 상단골, 중단골, 하단골 등 3단골이 되어 당팟 운영의 주체 역할을 하고 마을 주민 모두는 만민 단골로 구성되어 있다.
한남리 본향당은 제단 뒤편으로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가 있다. 본향당 주위는 돌담으로 돌려 있고, 제물을 진설하는 제단은 새로 개축하여 정비되었다. 현재 본향당의 입구 반대쪽으로 여러 제물을 태우는 소각장이 있다. 2022년도 당제일에는 비가 내려서 바닥이 질퍽해져 굿하기가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23년에는 당제일 전에 이장 주도로 바닥에 매트 공사를 하여 제장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단장하였다.
본향당의 제단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당신을 위한 제단이 제장 중앙에 위치한다. 중앙 제단 오른편이 산신을 위한 제단이다. 중앙 제단 맞은편에는 영등신을 위한 제단이 상석(床石)의 형태로 있다.
본향당 신과세제의 준비는 상단골·중단골·하단골 집안의 종부(宗婦)가 대부분의 책임을 맡아 이루어진다. 이들이 맡아서 하는 일은 마을 공동체 차원의 제물 준비, 제일 당일에 마을 주민들이 개인별로 준비한 제물 진설, 심방 식사 대접, 도액막이 용 수탉 준비 등이다. 제물을 진설하고, 의례 중 마을주민을 대표하여 배례하고, 의례를 진행하는 내내 심방을 도와 제물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각기 나누어 책임지는 일도 있다. 상단골인 현씨 집안에서는 마을 차원의 제물과 도액막이 용 수탉을 준비한다. 수탉은 당굿을 위하여 집에서 직접 키운 것이다. 중단골인 고씨 집안에서는 심방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전승이다. 하단골인 오씨 집안에서는 심방들의 저녁을 준비해 왔는데, 이제는 오후면 굿이 끝나는 관계로 이 책임은 없어진 양상이다.
본향당 신과세제에는 상단골·중단골·하단골 집안의 종부(宗婦)들이 새벽 6시 경 맨 먼저 도착하여 당제 치를 준비를 시작한다. 당신과 영등신을 위한 제물로 돌레떡, 메, 제숙, 고기적, 계란, 과일, 제주를 준비한다. 산신을 위한 제물로는 여기에 더하여 소고기와 생선을 준비하는데 모두 날 것이다.
마을 신앙민들은 본향당에 도착하면 먼저 본향당신을 위한 제물을 상·중·하단골 종부들에게 주어서 본향당신 제단에 진설하게 하고, 산신과 영등신을 위한 제단에는 각자 본인들이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본향당신부터 산신으로, 마지막에 영등신의 순서로 진설한다. 준비해온 제물을 모두 올린 단골은 다시 중앙 제단 앞으로 와서 절을 하고 제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리에 앉고 나서는 각자 지전 등을 제작하면서 의례에 참여할 준비를 한다.
한남리 본향당 신과세제에는 대개 4명의 심방이 참여한다. 강금춘 심방, 마치순 심방(여·1947년생), 강성렬 심방(여·1953년생), 최향숙 심방(여·1976년생)이다. 최향숙 심방이 수심방으로 당굿을 맡아 했으며, 다른 심방들은 연물을 맡거나 수심방을 도와 의례 진행에 대한 소미 역할을 한다. 의례 진행 소미 역할에는 주로 강성렬 심방이 나섰다. 강금춘 심방과 마치순 심방은 주로 연물을 맡았다. 본 의례가 끝난 후 이어지는 개인 집안별 액막이와 각산받음은 네 명의 심방이 모두 참여하여 함께 하였다.
심방들은 당에 도착한 후 단골들이 진설해 놓은 본 제단을 살피고 나서 제단 아래로 공시상과 데령상을 차렸다. 그 후에 감상기, 군문기, 신칼치메, 지전 등의 기메를 제작한다. 심방들이 기메를 제작하는 동안, 진설을 모두 마친 상·중·하단골의 종부들은 제단 아래로 내려와 당신을 향하여 배례한다. 수심방은 배례를 마친 상단골 종부의 도움을 받아 축원문을 작성한다. 마을을 대표하는 기관장들의 명단이 주된 내용이 된다.
한남리 본향당굿은 크게 초감제와 추물공연, 액막이로 진행된다. 새도림과 군졸지사빔을 제외하고 모든 의례를 최향숙 심방이 맡아 하였다. 새ᄃᆞ림은 강성렬 심방이, 군졸 지사빔은 마치순 심방이 맡아 하였다. 모든 신앙민들 집안의 액막이가 끝나면 마을 전체를 위한 도액막음을 한다. 이때 수탉을 희생으로 바친다.
도액막음까지 마친 후에 마지막으로 최향숙 심방이 ‘제명 물색’을 태운다. ‘제명 물색’은 색색의 작은 조각천으로, 모든 신앙민이 천원 정도의 제비와 함께 당신에게 바치는 제물 중 하나이다. 정확한 내력이 전해지지 않으나 신앙민들은 당신에게 수복壽福을 비는 제물로 관념하고 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당신을 위한 제물로 집에 있던 천조각을 끊어 바치던 풍습이 의례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게 한다.
한남리 본향당에서 행해지는 당굿 운영의 법도는 전통적인 단골 제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양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당신에 대한 제물을 진설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제주 당신앙 의례에서 당신에 대한 제물 진설은 심방이 주관한다. 그런데 한남리 본향당에서는 단골이 하고 있다. 특히 당신을 위한 중앙 제단은 상단골·중단골·하단골 집안의 종부(宗婦)에 대해서만 제물 진설이 허용된다는 점, 당굿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상·중·하단골 집안의 종부들이 책임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승 현황
현재 한남리의 매인 심방은 최향숙(여, 1976년생)이다. 전에 이 맡아하다가 다. 이전 20녀년 매인 심방을 맡았던 신순일 심방이 아파 매인 심방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서 마을 신앙민들의 청으로 강금춘(여·1943년생)이 맡게 되었다. 강금춘 심방이 3년 전 최향숙 심방에게 매인 심방을 물려주었다.
한남리는 지금껏 옛법 그대로 당굿의 의례를 전승해 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당굿 의례를 맡아 하는 매인 심방은 단골들이 내는 제비(祭費)-‘명쒜’(각산받을 때 올리는 제비)-만을 받아 왔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국가나 제주도 차원의 지원금을 받는 마을이 아닌 경우, 지금도 대부분의 마을이 단골들이 내는 제비만으로 심방들의 인건비를 삼고 있다. 그런데 단골들의 숫자는 줄고, 참석하는 단골들이 대부분 고령인 관계로 ‘명쒜’로 올리는 금액이 한 집안에 대개 1만 원 이상을 넘지 않는다. 많은 본향당이 연물을 갖춘 당굿을 하지 못하고 ‘비념-액막이’만으로 변화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요소가 큰 이유가 된다. 당굿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소미를 포함하여 수심방까지 4명의 심방이 필요한데 이럴 경우 매인심방인 수심방이 소미들의 ‘품(인건비)’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남리도 이러한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제주도 마을 신앙에서 거의 사라진 단골 제도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한남리 당굿의 가치는 상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남리 또한 제주도 모든 마을의 당굿이 직면하는 현실을 피해 가지는 못하고 있다. 상단골 종부인 변영미 씨(여·1972년생)는 한남리 본향당에 다닌 지 20여 년이 되었다. 처음 다닐 때만 하여도 제단 위에 제물을 놓을 자리가 없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끝나곤 했던 기억을 전한다. 시어머니에 이어 상단골을 맡게 되면서 그 책임이 막중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함께 정성을 모아 이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최향숙 심방은 올해 굿 말명에서 변영미 씨를 ‘새 단골’이라 칭하였다. 이제 제주도 당굿에서 이런 ‘새 단골’을 보는 일이 참으로 어렵게 되었다. 한남리 본향당굿에서 전승되어온 단골에 의한 전승이 앞으로 얼마나 역동적으로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마을과 제주도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마을 단위로 운영되고 있는 다른 지역의 본향당과는 달리 한남리 본향당은 현씨, 고씨, 오씨와 같은 성씨로 구성된 단골에 의해 운영된다는 특징이 있으며, 신앙 형태 또한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승 보존의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