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잠녀가

潛女歌


〈잠녀가〉_신광수 《석북집》_해녀박물관 제공

정의

신광수가 1764년 제주도에 왔을 때 해녀의 작업 장면을 보고 지은 한시.


내용

석북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1764년 금오랑金吾 郞이 되어 이익 등과 함께 죄인을 잡아 오는 일을 하기 위해 제주로 향한다. 이때 제주에 머물렀던 경험을 《탐라록》으로 남겼는데, 《탐라록》은 《석북집》 권7에 실려 있다.
《탐라록》에는 58제의 시가 실려 있다. 신광수의 행장에 의하면 이 《탐라록》은 《부해록浮海錄》으로도 알려져 사람들에게 널리 애송되었다고 한다. 제주를 방문했던 독특한 경험이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권의 첫머리 에는 이익李瀷, 목만중睦萬中, 정범조丁範祖의 서문 및 자서自序가 있다.
<잠녀가潛女歌>는 제주해녀를 사실적이면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번암 채제공은 신광수의 묘지명에서 ‘기이한 선비[기사奇士], ’기이한 일[기사奇事], ‘기이한 문장[문장지기文章之奇]’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작품이 ‘기이함’의 산물임을 강조하였다. 허훈許薰 역시 《탐라록》을 제주기행 기록의 백미로 평가하며 서울의 종이 값을 올렸다고 평가하였다.
<잠녀가>는 제주도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광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제주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은 다분히 낭만적 정취를 자아낼 수 있는 이국적 풍물이었지만 이는 생계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신광수는 생계를 위해 잠수하는 해녀들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이를 현실적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이 관리들과 육지 양반들의 입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랄히 비판하였다.
이 시는 크게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도입부로 제주 풍속에서 잠녀들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곳 풍속에 신붓감으로는 잠녀가 제일이어서 부모들이 의식 걱정 않는다고 자랑을 하네.”라는 구절에서 제주 가정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해녀의 모습을 그렸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이어 시인은 갈구리, 채롱, 뒤웅박에 잠방이를 입고 깊고 푸른 바닷물로 뛰어드는 모습과 함께 오리나 따오기처럼 물속을 왕래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다가 “일시에 긴 휘파람소리 숨을 토해내니 그 소리 참으로 슬프디슬프네, 아득히 수궁으로 메아리쳐 가는구나.”라고 하면서 해녀의 험난한 삶을 애달파하였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현실 비판적인 시각이 표현되었다. 시인은 “관리 들은 비록 돈을 주고 산다지만 팔도에 진봉하고 서울로 올려 보내자면 하루에 몇 짐이나 생복, 건복 내야 하나 금옥金玉은 고관의 포주庖廚요 기라綺羅는 공자公子의 자리”라고 하면서 잠녀의 목숨을 건 전복 채취가 결국 서울 고관대작의 부엌으로 들어가는 현실을 이야기하였다.
이가원은 <잠녀가>에 대하여 “이에는 잠녀의 전면적인 생활 실태를 곡진하게 묘사하되 그들을 탐리경사貪利輕死의 가엾은 고해에서 구출치 못함은 오로지 저 금옥포金玉庖와 기라석綺羅席의 일부 귀족계층의 갖은 음일淫逸과 착취로 이 불균형의 사회를 조성하였으며, 이에 기인한 모든 비극은 쉽게 한 개의 서생인 석북으로서는 만회하기 어려움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음은 아니겠지만 그의 충군 애국적인 불타는 사상을 갑자기 억제하기에는 어려웠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신광수가 관리로서 민중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확히 통찰한 것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제주도는 땅이 척박하고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기 때문에 잠녀들의 바닷일은 섬사람들의 의식을 해결하는 생계의 방편이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노역이었다.
이 작품에서 신광수는 잠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 물을 캐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갈고리, 종다래끼, 뒤웅박 등의 작업 도구는 물론 거의 발가벗은 모습으로 바다에 나서는 잠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해녀들의 고달픈 삶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해산물의 내력을 모르는 벼슬아치의 주방 모습을 통해 더욱더 비극적으로 부각된다. 대조적인 현실을 통해 모순에 가득 찬 지금의 모습을 폭로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고관대작의 파렴치한 삶을 비판하고 있다.


특징과 의의

신광수는 《탐라록》에서 <한라산가>, <제주걸자가濟州乞者歌>, <잠녀가>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한라산가>는 한라산의 웅대한 모습을 그려내었다. <제주걸자가>, <잠녀가>와 같은 작품은 제주의 걸인, 잠녀와 같이 미천하면서도 어려운 삶을 견뎌내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 내었다. 즉 신광수는 민중의 어려운 삶에 관심을 갖고 이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참고 문헌

박용만, <신광수의 「탐라록」에 나타난 제주에 대한 인식과 정서>, 《탐라문화》 66,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2021.
부영근, <석북 신광수의 「탐라록」 고찰>, 《영주어문》 8, 영주어문학회, 2004.
송민경, <조선후기 문인들의 제주명승 인식과 변화>,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필자

김새미오(金새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