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노래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해녀의 노래)_우도_2017_김동윤
정의
강관순이 1932년 무렵에 지은 4연의 시이자 4절의 노랫말.
내용
우도 출신의 강관순(康寬順, 1909~1942)은 1931년 3월 구좌면에서 신재홍, 오문규, 문도배, 김시곤, 김성오 등과 함께 사회주의 계열의 비밀결사인 혁우동맹革友同盟 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6월에는 신재홍의 권유로 제주도 야체이카 결사의 당외 기관원으로 가입하는 한편, 김성오와 함께 고봉준, 고원한과 회합하여 ‘적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연락부원이 되었다. 그러던 중 1932년 1월부터 구좌지역을 중심으로 해녀항쟁이 전개되면서 일련의 활동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6월 대구복심법원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강관순은 이때 옥중에서 4연으로 이루어진 <해녀의 노래>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마침 동지 오문규를 면회한 부인 홍무향을 통해 청년운동가에게 전해졌다. 이후 <도쿄東京 행진곡>의 곡조를 붙여 <해녀의 노래>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강관순의 <해녀의 노래>는 당시부터 널리 불렸으며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승되는 노래다. 1996년 여름 우도 선착장에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가 건립 되면서 그 하단에 <해녀의 노래>를 새겨놓았다. 구좌읍 하도리 해녀박물관 경내의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옆에도 이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 전문은 “①우리는 가엾은 제주도의 해녀들/ 불쌍한 살림살이 세상도 안다./ 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 ②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 종일 헤엄치나 번 것은 기막혀/ 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③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하고/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어/ 파도 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각처 조선·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④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 해녀 어데로 갈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노랫말)에는 해녀들의 삶과 애환은 물론이요, 활동 범위와 수탈 양상까지 담아내고 있다. 1연(절)과 2연은 사시사철 물질 작업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집안 살림까지 해내느라 쉴 겨를이 없는 해녀의 고달픈 신세를 드러내고 있으며, 3연과 4연은 1930년대 해녀들이 제주도 밖 한반도의 다른 곳이나 일본 대마도까지 진출하여 바깥물질 작업을 했으면서도 조합이나 기관으로부터 심한 착취를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특징과 의의
1930년대 제주해녀의 생활상과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이다. 제주의 항일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위상을 지닌 성과임은 물론이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했던 강관순의 현실 인식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김병택, 《제주현대문학사》,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5.
김영화, 《변방인의 세계: 제주문학론》, 제주대학교 출판부, 1998.
필자
김동윤(金東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