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감태공장


정의

해녀들이 채취한 감태를 원료로 활용해서 요오드를 제조한 공장.


내용

감태는 한반도 남해안과 제주도에 분포하는 갈조류로써 전복의 주요 먹이다. 일본에서는 19세기 중엽 이후 요오드를 만드는 데 감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는 태풍에 떠밀려온 감태를 비료로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일제강점기에 의약품인 요오드뿐만 아니라 군수품인 화약의 원료로 활용되면서 수요가 폭증했다.
일본 미에[三重]현 와구[和具] 출신의 이시하라 엔키치[石原圓吉]는 일본 수산업의 선구자로서 일본 내에 수산물통 조림 공장과 감태를 이용한 요오드 공장을 여럿 설립했다. 이시하라는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일본 육군성과 농상 무성의 지시를 받아 4,000t의 요오드를 제조하기 위해 제주도 성산포에 요오드공장인 조선옥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05년 11월에는 제주목사 조종환으로부터 상장을 받았으며 제주도 내에서 감태 지정매수 허가를 받았다.
1925년 성산포에서 요오드공장을 경영 중이던 니노미 야요시마[二宮義馬]가 이시하라의 협조 아래 감태재를 해녀들로부터 매수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공황의 여파로 요오드 가격이 폭락해 감태재 가격도 하락했다. 결국 성산포에 있던 이시하라의 공장은 폐쇄하고 니미야의 공장만 겨우 경영을 이어가게 되었다. 해녀들이 채취한 감태는 가격 하락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1927년에 이르러 해녀들은 해녀어업조합을 통해 감태 판매를 강력하게 요청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측과 요오드공장, 해녀들 사이에 감태 가격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게 됨으로써 1930년대 초 해녀항일투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참고 문헌

안미정, 《한국 잠녀, 해녀의 역사와 문화》, 역락, 2019.
<誤報は 亂れ飛ぶ![中] 海女問題の眞相>, 《木浦新報》, 1932년 6월 5일자.
<誤報は 亂れ飛ぶ![下] 海女問題の眞相>, 《木浦新報》, 1932년 7월 6일자.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