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하도리 해산물 부정판매 사건


정의

1931년 하도리 해녀들이 채취한 전복과 감태를 해녀조합이 부정 판매한 사건.


내용

1930년의 성산포 천초 부정판매 사건이 일어난 후에 도민들 사이에 관제조합에 대한 반대 인식이 급속히 높아졌다. 농민들은 자체적인 단결로써 농민회의 조직에 착수하였고 해녀들도 역시 자생적 조직인 해녀회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갔다. 해녀회는 성산포와 구좌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하도리·종달리· 연평리·세화리 등 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다.
대중들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당국과 해녀조합의 수탈정책은 계속되어 갔다. 이러한 가운데 1931년 구좌면 하도리산 해산물에 대한 부정판매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하도리 해산물 중 감태에 대하여서는 물산회사의 오야마大山라는 일본인에게 1백 근당 1등급 2원 60전, 2등급 2원 40전, 3등급 2원 30전으로 매수하기로 되었는데 이 가격은 그때 시가의 4할에 불과한 것이었다.
생복은 대大의 경우 근당 16전으로 상인 고태영(하도리), 양명주(연평리)에게 매수권을 지정하였다. 그런데 생복 지정 상인 고태영은 이 지정 가격을 임의로 대 10~8전, 소 8~6전이란 저가로 매수할 것을 해녀들에게 강요하였다. 고평호는 조합 서기와 결탁하고 강압적 태도를 취하였다. 해녀들은 이런 부당한 사실을 알고 즉시 조합에 항의하여 생복은 지정 가격으로 매수할 것과 감태는 시가가 4원 이상이니 재평가하여 매수하라는 요구를 제출하였다. 해녀 조합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즉시 김녕출장소 주재서기 김평관을 현지에 파견하였다. 김평관은 곧 하도리에 가서 고태영에게 지정 가격대로 매수하라는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해녀들에게 사과하게 함으로써 해녀들을 진정시 키려고 노력하였다. 또 감태 문제는 시가에 준하여 재평가해 판매할 것을 확약하였다. 그러나 그 후 생복 매수인 은 나타나지도 않고 감태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에 해녀들은 2차로 항의서를 제출하고 조합의 태도가 너무나 무성의함을 추궁하였다. 이번에는 조합에서 해녀들에게 생복을 건복으로 만들어 판매하면 처리할 것이고 감태도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해녀들은 이 조건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양보하고 수락하였다. 그러나 조합에서는 그 후에도 약속을 실행치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소식조차 없었다. 결국 이 같이 조합의 무성의 한 태도에 반발하여 하도리 해녀들은 1931년 6월부터 직접 투쟁에 들어가기로 결의하였다.
우선 해녀들은 이웃 마을인 종달리·연평리·세화리 등지 의 해녀들에게 진상을 호소하고 면민들에게 조합의 정체 를 알리고 규탄하는 활동을 개시하였다. 활동적인 해녀들은 각 마을을 다니면서 사건의 진상을 보고하고 “우리들의 생활과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단결하여야 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해녀들의 조직적인 활동에 따라 각종 집회가 열리고 농민회, 해녀회 등의 회합에서는 각종 관제조합을 분쇄하자는 결의들이 채택되었다. 결국 1931년 12월 20일 하도리 해녀들은 회의를 열고 최고지도자 3명과 대표위원 10명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12월 24일 해녀들은 ①지정가격 절대 보장, ②지정 등급 절대 보장, ③계약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할 것, ④매수 거절로 인한 손해배상 요구, ⑤지정 판매 절대 반대를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즉각 제주읍의 해녀조합 사무소로 항의하러 가려고 하였다. 해녀들은 경찰의 방해를 염려하여 육로를 버리고 해로를 택하였다. 해녀들은 즉각 발동기선 주길환住吉丸을 타고 제주읍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심한 폭풍으로 말미암아 배가 나아가지 못하여 일단 이 투쟁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도리에서 시작된 해녀투쟁은 다음 해인 1932년 1월 본격적인 항일 집회 및 시위 투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문헌

<誤報は亂れ飛ぶ!【中】 海女問題の眞相>, 《木浦新報》, 1932년 6월 5일자.
<誤報は亂れ飛ぶ!【下】 海女問題の眞相>, 《木浦新報》, 1932년 7월 6일자.
박찬식, <제주 해녀의 항일운동>, 《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 제주 해녀항일투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 1995.
<奸商의 鮑價不正引下로 濟州千 餘海女奮起: 海女들은 漁業組合에 抗議 商人偏護를 憤慨>, 《조선일보》, 1931년 8월 13일자.
<濟州島八千海女 要求條項達成 자긔들의 생산판매를 위해>, 《조선일보》, 8월 25일자.
<指定價格保障하라고 海女組合에 抗議 오일까지 확답업스면 조합탈퇴 組合側回答이 注目處>, 《조선일보》, 1931년 12월 31일자.
현상호, 《제주도 해녀투쟁의 사실》, 1950.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