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환
君代丸

아마사키기선의 제2군대환_1925_原口利 소장_이지치 노리코[伊地知 紀子] 제공
정의
1923년부터 1945년까지 제주도와 일본 오사카 간 직항로에 취항했던 일본 선박.
내용
1923년 2월부터 제주도와 일본의 오사카를 직항하는 전용기선 항로가 처음 열렸다. 본격적으로 대형 기선을 동원해 제주-오사카 항로에 뛰어든 업체는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아마사키[尼崎] 기선회사였다. 이 회사는 아마사키 가문이 해운 중심의 사업을 전개한 간사이[関西] 지방의 재벌이었다. 1923년 3월 아마사키기선은 최초의 배를 제주-오사카 항로에 띄웠다. 처음 운항한 배는 군대환君代丸이 아니고 다이유마루[大有丸](581t)였다. 군대환의 첫 출항 기록은 1923년 6월 1일로 확인된다.
군대환은 일본어로 ‘기미가요마루’로 불렸다. 기미가요君が代는 일본 국가로, “천황 통치가 천년만년 이어지리라.”며 일왕 치세가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내용이다. ‘기미’는 곧 일왕을 지칭한다.
군대환은 제1군대환과 제2군대환 두 척이 있었다. 제1군대환은 네덜란드 선박을 개조한 것으로 669t 정도의 중형급 증기선이었다. 1923년 6월 이후 제주-오사카 항로에 나선 아마사키기선의 주력 기선이었다. 제1군대환은 1925년 9월 6일 오사카에서 목포로 향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서 제주도 고산-용수 해안에 좌초·파선되었다. 제2군대환은 제주도 해안에서 좌초한 제1군대환 대신으로 제주-오사카 항로에 투입된 배였다. 1925년에 소련 정부로부터 구입한 군함 ‘만주르’를 개조한 것이었다. 총 919t, 길이 62.7m로 일제강점기 제주인들의 기억에 남은 ‘군대환’은 이것을 말한다. 1926년 6월부터 제주-목포-오사카 간 매월 4회의 정기항로를 운항했다. 1927년경 군대환의 운임은 편도가 12원 50전이었다. 당시 오사카 방적공장 여공의 일급이 1원이었다고 하니 여공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싼 운임이었던 셈이다. 제2군대환은 선령 44년의 노후선으로 그 뒤 20여 년간 운항했다. 1945년 4월 오사카 아지가와[安治川] 부근에 정박해 있다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침몰했다.
일본을 오가던 제주 출신 노동자와 출가해녀들은 군대환을 주로 이용했다. 1937년 3월 31일자 《대판매일신문》 에는 제2군대환이 젊은 제주도 해녀 380명을 가득 싣고 오사카항에 입항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당시 제주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배로 인식되어 제주 사회에서는 제주 속담에 큰 배를 두고 ‘군대환 같다.’라는 표현이 전해져 내려왔다.
참고 문헌
김찬정, 《異邦人は君ヶ代丸に乗って―朝鮮人街猪飼野の形成史》, 岩波書店, 1985.
박찬식, <해금과 침탈을 넘어, 자주운항의 역사>, 《한라일보》, 2024년 3월 26일자.
辛在卿, <君が代丸>についての歴史的考察>, 《京都創成大学紀要》 第7巻, 2007.
이지치 노리코, <국외 출가해녀>, 《제주여성사Ⅱ: 일제강점기》 , 2011.
츠카사키 마사유키, <오사카-제주도 항로의 경영과 제주도 민족자본>, 《4·3과 제주역사》 9·10호 합본, 2010.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