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의숙
永明義塾

사립연평심상소학교 제1회 졸업기념_우도초등학교총동창회 제공
정의
1915년 우도에 설립된 개량 서당.
내용
영명의숙永明義塾은 1915년 개설되어 무인가 상태로 운영되었다. 1918년 5월 10일 우도 상우목동과 하우목동 사이에 있는 ‘도가집’(공회당)에서 사숙(개량서당)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숙장은 윤관중이며, 교사는 김응두, 김병훈, 김지호 등이다.
1924년 상우목동 경내에 2개 교실(20평)을 신축하여 이설했다. 1928년 같은 곳에 5개 교실(100평)을 개증축했다. 재정 문제로 마을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 학교가 잠시 폐쇄되었다. 1929년 지방 유지와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1929년 상우목동에 민가를 얻어 학생을 모집하고 다시 개교했다.
1930년 김해일을 설립자 명의로 인가받고 1930년 5월 설립자를 김윤옥으로 변경했다. 우도 중앙에 윤행준으로부터 약 2,000평, 고재춘으로부터 약 700평의 부지를 희사받아 2개 교실, 직원실 40평을 건축하여 이곳에 서당을 옮겼다. 또 강영근으로부터 약 500평의 토지를 희사받아 교지를 확장했다. 1936년에 전인홍(당시 구좌면장)이 설립 자가 되어 사립심상소학교로 인가 변경되었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공립국민학교로 자연 승격되었다.
특징과 의의
1932년 해녀항일투쟁 당시 영명의숙에 다니 던 다수의 해녀들이 세화리 오일장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 해녀투쟁 전에 학교에서 연극 공연을 하던 중에 교사 강관순이 학생들에게 해녀의 노래를 가르쳤다는 증언이 전해져 온다.
참고 문헌
고태주, 《우도 향토지》, 1972.
김순두, <강관순의 일생>, 《제주해녀항일운동 90년 우도의 노래》, 해녀의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 2022.
우도지편찬위원회, 《우도지》, 1996.
필자
박찬식(朴贊殖)